토론문화 정착은 정치에 희망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한 대선후보 간 2차 TV토론이 끝났다. 이정희 후보의 저돌적 토론이 화제가 됐던 1차 토론에 비해 대체로 차분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선거에 미치는 TV토론 효과에 대체로 회의적 시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선거에서 TV토론은 중대한 선거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는 느낌이다. 당장 시청률만 봐도 전체 합계 29%였던 1차 법정 TV토론에 이어 2차 TV토론의 시청률이 27.7%를 기록했다. 특히 전체 가구시청률과 함께 집계되는 시청가구 내 점유율은 두 차례 모두 40%를 넘겼다. TV를 가진 전체 가구 중에서는 세 집 걸러 한 곳, TV를 보던 가구 중에서는 두 집 중 한 집 가까이가 토론방송을 봤다는 얘기다. 이 같은 TV토론과 관련, 그 내용에 대한 다양한 소감이나 평가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후보 간 지지도에 미치는 효과다. 다시 말해 내가 본 TV토론에 대해 남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들은 즉각적 여론조사 등을 통해 지지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토론의 영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대체로 TV토론의 효과와 관련한 가장 일반적인 이론은 유권자가 지지하는 변화를 바꾸기보다는, 지지하는 후보를 더욱 더 지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지변화가 아닌, 지지자의 지지태도를 강화시킨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12월4일 열렸던 1차 TV토론 이후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3자 간의 지지율 변화는 크지 않았다. 조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10% 안팎의 유권자들만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변경했다고 응답하는 등 지지후보 변경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았다. 실제 역대 TV토론 이후의 평가조사에서 자신의 지지후보를 바꿨다는 응답자는 20% 안팎에 머물렀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2012년 대선에서의 TV토론은 과거와 달리 그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무엇보다 TV토론이 가지는 직접적 효과 못지않게, 간접적 효과가 만만치 않다. 대체로 토론 직후의 지지율 변화와 같은 단기적, 미시적 효과측정과 별개로 선거캠페인 과정 전반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거시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먼저 TV토론은 후보의 이미지 전반에 영향을 줄 뿐더러, 또 후보 스스로도 자신의 역량을 평가하게 만든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 간 TV토론은 당시 민주당 지지층들을 결집시키며 실제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이후 안철수 후보에게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주면서 후보사퇴에 이르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TV토론은 미디어들의 후속보도를 통해서도 그 효과가 지속된다. 즉 일부 연구에서는 TV토론 자체보다 신문의 토론에 대한 해석이 유권자에 영향을 크게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8년 포드와 카터 간 미국 대선 TV토론의 경우, 방송 직후 여론조사에서는 포드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동유럽과 관련한 포드의 말실수가 언론에 의해 집중 조명되면서 그 다음 날 측정한 조사에서는 카터의 확연한 우세로 뒤집어지기도 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TV토론에서도 박찬종씨의 과거 유신지지와 관련한 거짓말 시인 등의 후속보도로 인해 지지율이 크게 출렁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신문보도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2차 간접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한편 지금과 같은 박빙의 지지경합의 상황에서는 20% 안팎의 지지후보 변경률도 결코 작은 효과라 보기도 힘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안철수 전 후보의 사퇴 이후 유동층화되거나, 투표의향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젊은 유권자들의 대선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TV토론이 가지는 최종적 중요효과는 바로 '투표율 제고'라 할 수 있다. 대선후보 TV토론이 선거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주요 이벤트가 됨은 물론이고, 지지층의 지지태도를 강화시키면서 투표참여율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더 투표장에 많이 나가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숨은표, 유령표의 향방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다음 주에는 선거 3일 전인 16일 사회, 교육, 과학, 문화, 여성분야 등을 중심으로 3차 법정 TV토론이 예정돼 있다. 이미 3차토론 일정과 관련해 인터넷상 검색어 순위가 높아지는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법정 TV토론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토론의 형식도 답답하고, 또 민감한 부분에 대해 후보들의 말 비켜가기 등으로 심도 있는 정책토론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또 '면박주기' 등과 같은 네거티브 토론방식은 결코 바람직한 토론방식도 아니다. 한편 법정 TV토론 외에 장외 토론이 활성화돼 더 많은 토론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TV토론은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무엇보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도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선토론이 자리 잡혀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 TV토론이 실언이나 비리, 전력 폭로 등과 같은 돌출효과가 아닌, 정책평가와 후보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유권자가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투표할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대선토론의 첫 원년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해 본다. 김헌태 정치평론가ㆍ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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