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세로 고통받는 서민.. 노후대비도 '빨간불'
전세난 속에 반전세와 월세가 늘면서 서민들의 주거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전월세 거래현황을 보면 2010년 6월 12.55%에 불과하던 월세 비율은 9월 18.53%까지 증가했다. 반전세는 전세를 재계약할 때 보증금 일부를 매달 월세로 전환하는 형태다. 월세증가 현상은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국내 월세가구는 전체 조사 대상자의 21.4%로 처음으로 20%선을 넘어섰다. 5년 전보다 2.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같은 기간 0.7%포인트 하락한 전세가구(21.7%)와 비슷한 수치다. 월세는 전세금처럼 주인한테서 되돌려 받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생활고를 부추길 수 있다. 보증금이 낮아지고 월세가 늘어나면 노후생활에 대비하기도 팍팍할 수밖에 없다. 서구처럼 월세가 늘어나는 세태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서울시 내 전·월세 거래 현황(자료: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전세는 줄고 월세가 늘어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D아파트 40평대에 사는 박모(52)씨는 다달이 내야할 집값을 생각하면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 여름 전세 재계약 때 집주인이 1억5000만원이던 보증금을 절반 인상한 2억3000만원으로 높였다. 고등학생 자녀 학교 문제로 인근 전세매물을 찾아봐도 죄다 반전세 뿐이었다. 여의치 않았던 박씨는 결국 8000만원의 보증금 인상분을 매달 35만원씩 내는 '반전세'로 재계약 했다. 대학생까지 자녀가 셋인 박씨는 빠듯한 살림살이가 다달이 나가는 월세 탓에 크게 타격을 입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이모(48)씨도 비슷한 사례. 최근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중이 급증했다. 일대 전셋값이 급등하며 집주인은 4억2000만원이던 전세금에 추가 보증금 대신 매달 50만원을 달라고 요구해서다. 자녀 학교 때문에 멀리 이사갈 수도 없고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려웠던 이씨는 생각지도 않던 '월세 살이'를 시작했다. 반전세 전환 가구가 늘며 생활에 압박을 받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중년층이상의 노후대비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매달 지출이 커져 노후를 준비하려던 자금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 것이다.아파트에 월세가 거의 없었다지만 이젠 보편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 아파트만 봐도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계약한 사례만 여러 건이다. 국토해양부 전월세 실거래가자료에 따르면 올 9월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총 37건의 거래 중 6건이 월세 형태의 전세다. 오피스텔, 원룸 같은 소형주택에 많던 월세가 아파트까지 번졌다.인근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기존 세입자 80~90%가 재계약하다보니 전세는 물건이 거의 없다"며 "워낙 시중금리가 낮아 집주인들이 전세가격 인상분을 월세로 돌리는 형태의 반전세를 많이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단지 전경. 이 일대엔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월세 형태의 전세인 '반전세' 매물이 급증했다.
이런 현상은 지방에서도 나타난다. 부산 해운대구 센텀센시빌 84㎡는 지난 7월 총 5건의 거래 중 절반 이상인 3건이, 9월의 2건 거래 모두 반전세다. 비슷한 시기 전세가가 1억7000만원인데 월세는 보증금 6000만원에 매달 50만원, 보증금 2000만원에 월 90만원 등으로 계약된다.이에 아파트 반전세를 시작한 중년층은 노후대비에 빨간불이 켜졌다. 용인 수지구 박모씨는 "자녀 교육까지 겹쳐 노후대비는 커녕 매달 생활하기도 버겁다"고 전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보통 나이가 들수록 정기적인 수입이 제약돼 매달 지출이 생기는 월세를 꺼린다"면서 "반전세로 노후준비에 타격이 생기고 삶의 질도 열악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저소득 계층은 더 심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주택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주거복지 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주거 관련지출이 2005년 소득의 29%에서 2010년엔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에서는 이 경우 임대료 우선 지원 등 정부 특별지원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월세 확산 현상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높은 수익을 원하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더욱 꺼릴 것"이라며 "가처분소득에서 매월 나가는 의식주비가 늘어 서민 가계 부담도 커질 것"이라 내다봤다. 따라서 "다양한 임대주택 상품을 유도해 사적 임차시장 의존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집값이 계속 올라가지 않고 보유 부담이 가중되면 월세 전환은 확대될 것"이라며 "정부는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전세자금대출을 늘리는 등 전세제도를 유지시키는 쪽으로만 정책을 펴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오히려 낮은 보증금에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월세 소득공제 혜택을 중산층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반전세와 월세로 중년층의 노후대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박미주 기자 beyon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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