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br />
‘打倒日本(타도일본).’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때려잡자 일본’일 터인 이 글귀를 최근 중국에서 발견했다. 도시가 아닌 우리나라로 치면 면 단위 이하 시골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다.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빨간색 천에 노란 글씨로 쓰인 현수막은 주로 식당 등에 걸려 있었다. 중·일간 영토 분쟁의 결과물이었다. 문득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때의 일이 떠올랐다. 대회 기간 글쓴이는 중국 젊은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선전 경제특구에서 일하는 엘리트들이었다. 덩샤오핑에 의한 개혁 개방 정책이 추진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모두 나라의 선진화에 뜨거운 열의를 갖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술잔이 몇 차례 오간 뒤 글쓴이는 이들에게 쪽지를 건넸다. 종이에 담은 글귀는 ‘中韓聯合打倒日本(중한연합타도일본).’ 술 몇 잔에서 비롯된 시쳇말로 ‘오버’였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일본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공교롭게도 글쓴이는 10년 단위로 중국을 다녀왔다. 1990년과 2000년 그리고 2012년. 거대 중국을 말하는 건 어차피 코끼리 다리 만지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달라졌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경제적 변화가 아니다. 20여 년 전 중국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띈 낱말은 위생이었다. 이번에는 문명이었다. 글쓴이는 이런 변화의 배경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경제·군사 대국을 넘어 진정한 문명국가, 세계 1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듯 보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우리나라가 이후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중국의 향후 행보를 보다 분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다. 서울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올림픽 무대에서 촉발된 8년에 걸친 동서 진영의 반목을 깬 화합의 장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남자 농구 준결승에서 맞붙었을 때 한국 관중이 사실상 소련을 응원한 일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쿠베르탱은 1871년 프러시아(독일)와 전쟁에서 진 프랑스 국민들이 좌절감에 빠져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쿠베르탱은 영국의 퍼블릭 스쿨이 스포츠를 중요하게 여기고 내일을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스포츠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강한 프랑스를 재건하기로 마음먹은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피아 유적의 발굴로 고대 올림픽의 참모습을 알게 되자 프랑스 한 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것보다 세계 평화를 생각하게 된다. 고대 올림픽이 대회 기간을 전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전쟁까지 멈추도록 만든 진정한 평화의 제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쿠베르탱은 1892년 “스포츠에 의한 청소년들의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라며 올림픽의 부흥 즉, 근대 올림픽의 창시를 제창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올림픽=세계 평화' 등식에 가장 충실한 대회였다.
‘올림픽=세계 평화’라는 등식을 떠올리면, 2020년 제32회 하계 올림픽을 도쿄에 유치하려는 일본은 적격하지 않다. 과거사 때문이 아니다. 한·일, 한·중간 영토 분쟁을 일삼고 있는 오늘날 일본의 행태 때문이다. 일본 스스로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현지 일부 언론이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지지할지 의문시된다”라고 보도할 정도다. 내년 9월 7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제12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이스탄불, 마드리드와 겨루게 되는 도쿄는 최근까지 두 도시에 다소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유럽 쪽 IOC 위원들이 이스탄불과 마드리드로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토 분쟁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뒤흔들고 있는 일본은 한국(이건희 문대성)과 중국(양양 유자이칭 리링웨이), 홍콩(티모시 포크), 대만(우칭구오) 등 7표를 포기해야 상황에 직면했다. 등을 돌릴 것으로 예상되는 건 북한(장웅)도 마찬가지. 싱가포르(황시미안, 중국 출신)까지 반 도쿄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일본은 10표가 넘는 아프리카에서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경제·외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망언을 밥 먹듯 하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두 차례 더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는 이미 다양한 막말로 자국에서조차 비판을 받고 있다. “서양인의 유도는 짐승의 싸움 같다”,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해서 선택했다”, “남경대학살은 없었다”, “(지적 장애인에게) 인격이 있는가”, “중국인 범죄가 일본에서 만연하고 있다. 민족적 DNA 때문이다” 등이다. IOC 위원은 국가올림픽위원회(NOC)를 대표하지 않고 IOC가 파견하는 대사이기에 특정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국적은 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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