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계열사에 '통행세' 쥐어준 롯데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통행세. 말 그대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지불되는 돈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도, 수입품에 매겨지는 관세도 일종의 통행세로 볼 수 있다. 통행세는 중세에 가장 횡행했다. 영주들은 자기 영토를 지나다니는 상인들에게 통행료를 받아 챙겼다. 중세 영주들에게 통행세는 일종의 불로소득이었다. 최근 롯데그룹은 중간에 계열사를 끼워 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챙기게끔 유도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물게 됐다. 1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피에스넷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도 계열사인 롯데알미늄을 통해 간접 구매하는 방식을 택했다"며 과징금 6억4900만원을 부과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피에스넷은 2009년 9월 이후 약 3년 동안 ATM을 제조사인 네오아이씨피에게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도 롯데알미늄(구 롯데기공)을 통해 사들였다. 이 기간에 롯데알미늄이 벌어들인 금액은 41억5100원으로 당기순이익의 85.2%에 이른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중간거래를 통해 어떠한 경제적 효율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형식적인 역할만 수행하면서 중간마진을 챙겼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일은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의 직접 지시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정위 발표와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공정위가 확보한 당시 롯데그룹 직원들 간 메일에는 '롯데기공의 기여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신동빈)부회장의 지시로 롯데기공이 참여하게 됐다'는 부분이 나온다. 신동빈 당시 부회장이 중간에 계열사를 끼워 넣도록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대목은 대기업의 계열사 챙기기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물론 정권말기에다 대선을 앞두고 공정위의 칼날이 대기업에게만 가혹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기보다 쉽게 이익을 취하려는 대기업의 잘못에 무게가 더 실린다. 구태를 탈피하려는 대기업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울 것이다. 김혜민 기자 hmeeng@<ⓒ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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