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총장 기자회견문 전문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이사회에서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머셋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서 총장은 이 자리에서 기존의 '자진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이 자리에서 재확인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학 개혁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지난 1년여, KAIST가 적잖이 시끄러웠습니다.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교수사회 기득권에 도전하는 일은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완수하지 못한 과제입니다. “대학 개혁의 아이콘”, 그 “독선적”이라는 이 서남표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안 계셨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사드리면서도,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명 이사장님. 저는 이제 나흘 뒤면 KAIST 41년 역사상 처음으로 쫓겨나는 총장이 됩니다. 물러날 사유를 분명하게 밝혀주십시오. 저는 어떠한 얘기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에둘러 가지 말고, 원칙대로 해 주십시오. 두렵지도 않고,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정정당당하게 해임을 당하겠습니다. 그것이 KAIST를 위한 마지막 소임이며, 총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유일한 방도이며,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서남표가 이 정도 요구도 못하고 떠나야 합니까? 리더십과 소통, 대단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학교의 리더십은 권력이 아닙니다. 소통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사고나 행위가 개입할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과 사리에 맞는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남표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것은 정직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눈 앞 실리를 얻자고 원칙과 상식을 저버린다면 그 피해는 KAIST와 국민이 지게 됩니다. 국고를 낭비하면서까지, 총장 자리를 확보해야 할 중대한 정치적인 고려가 깔려 있다면 그것은 위험한 시도이며, 정의로운 일도, KAIST와 국민의 이익도 아닙니다. 지난 6년간 어려움을 헤쳐 왔는데, 효용가치를 다했으니 떠나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야박한 일입니다. 리더로서 무한책임을 지라고 하신다면, 리더로서 책임있게 운영하도록 최소한 총장 자리는 인정해주셨어야 합니다. 저는 이사장님과 단 한 번도 KAIST의 방향과 비전을 놓고 토론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관심은 제가 언제 나가는가 였습니다. 이사장님께서 하실 일은 우리가 경쟁해야 할 하버드, MIT 같은 세계 명문대 이사장들이 총장과 어떻게 힘을 합쳐 학교 발전에 기여하는지 그 점을 고민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명 이사장님, 다음 총장도 일부 교수와 학생, 과학계 인사들, 교과부가 싫어하면 해임하시겠습니까? 왜 일부라고 말씀드리는지 단 한번이라도 사실관계는 검증해 보셨습니까? 다음 총장이 KAIST 교수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교수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수, 학생, 직원이 참여하는 대학평의회에 의결권을 넘겨 주시겠습니까? 이사 중 1/3을 교수측이, 또 1/3을 총동문회가 선임하는 요구는 들어주시겠습니까? 지난해 10월 26일, 제가 이 두 안건을 상정했을 땐 왜 막으셨습니까? 교수들이 테뉴어 제도를 폐지하라고 다음 총장에게 요구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학생들이 영어강의 폐지하라고 하면 들어주실 것입니까? 제가 나가기만 하면 이런 요구들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기록을 바탕으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일부 교수 및 학교 밖 인사들로부터 사실이 아닌 일로 음해와 모함을 받아 왔습니다. 교수단체가 보낸 퇴진요구서만 서른 번이 넘습니다. 이사회 날짜만 정해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사퇴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이사장님이라면 어떻게 소통하시겠습니까. 어떤 리더십으로 해법을 찾으시겠습니까. 사실 앞에서 눈과 귀를 막고, 시끄러우니 물러나라 하신다면 이사장님은 물러나시겠습니까? KAIST에선 어떤 출신의 총장이 어떤 일을 해야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는 것입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6년간, KAIST는 잘 달려 왔습니다. 자산은 2배, 현금보유액은 3배로 늘었습니다. 200위권이던 세계 대학 평가가 60위권대로 들어서기도 했고, 공과 대학 순위는 20위권 수준입니다. 재임 전 51억원이던 기부금도 지금은 1700억원대입니다. 인류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EEWS 같은 세계 수준의 지속가능성 연구도 4년째 추진 중이며, OLEV, 모바일하버 같은 대형 프로젝트도 세계를 앞장서고 있습니다. KAIST라면 달라야 합니다. 앞서가야 합니다.(Advanced) 참여정부 시절, 제가 받은 사명은 세계적인 명문대 하나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현 정부에서 연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KAIST의 리더십은 특별해야 합니다. KAIST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많은 것을 성취해 왔습니다. 시스템, 인프라, 인적구성, 재정 안정성은 이미 세계 수준입니다. 세계 탑클래스 수준인 공학, IT, 자연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한층 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세계 명문대와 견주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문화입니다. 그래서 KAIST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관행과 관성에 근거한 낡은 문화는 지난 6년간 우리가 도입한 제도에 맞게 시민 모두가 따르는 민주사회 보편 원리에 맞게 새롭게 정착되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이를 저지하거나 무력화한다면 KAIST 역사에 죄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중단 없는 개혁의 추진과 완성을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조건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첫째, 정부, 정치권, 과학계, 구성원 그 누구라도 KAIST를 사유화해서는 안됩니다. KAIST는 국민이 주인입니다. 그런 곳까지 권력의 전리품으로 삼아선 안됩니다. 우리 스스로 합당한 역할을 한다면 권력에 기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둘째, 정치 연고, 학연, 지연으로 맺어진 특정 카르텔이 학교를 휘두른다면, 이는 반드시 국민과 구성원의 힘으로 해체되어야 합니다. 총장의 해임 사유를 찾지 못해, 편법적 수단을 쓰면서까지 총장 자리를 가지려는 분들께 KAIST의 미래를 맡겨서야 되겠습니까? 셋째, 책임있는 학교 운영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임기는 보장해야 합니다. 총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거취 문제로 흔드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이제는 극복해 내야 합니다. 넷째, 교수들도 초과권력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견제할 수 없던 관행은 민주시민의 덕목으로서 반드시 정상화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KAIST 가족 여러분. 저는 한국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한국 대학 개혁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서, 주어진 소임을 다할 생각입니다. 며칠 뒤면 저는 이사회로부터 사실상 해임을 당합니다. 당당하게 마주하고, 책임있게 도전하겠습니다. KAIST 발전을 위해서, 여생을 바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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