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국 정부주도형 수출 비난에 '수출의 날'→'무역의 날'로 변경하기도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1964년 11월 30일은 한국 무역에 있어 역사적인 날이다. 바로 이날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 규모가 5552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무역 1조달러 시대의 서막은 이처럼 작은 성과로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수출 1억달러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1964년 12월5일을 '수출의 날'로 정하고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상공부가 주최하고 코트라가 주관해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과 삼부요인(국회의장ㆍ국무총리ㆍ대법원장)을 비롯해 수출단체 및 업계 대표 등이 대거 참석한 거국적 행사였다.박 대통령은 당시 기념사에서 "우리 국민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다각적인 생산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공산품의 수출을 진흥시키는 데 가일층 노력하자"고 당부했다.이날 행사에서는 수출공로 업체들에 대한 표창장이 주어졌다. 천우사ㆍ삼호무역ㆍ영풍상사ㆍ동명목재상사ㆍ성창기업ㆍ판본무역ㆍ삼성물산 등 7개 업체가 식산(殖産)포장을, 한국합판협회ㆍ대한방직협회ㆍ한국해태수출조합ㆍ한국생사수출조합이 대통령 표창을 각각 받았다. 이 중 천우사는 1964년부터 4년 연속 수출실적 1위를 기록한 무역회사였다. 1960년대 수출진흥 정책의 총아로 불린 천우사는 '보세가공'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의류 및 합판을 수출했다.수출의 날 행사는 해를 거듭하면서 수출업계 최대 잔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1980년대 중ㆍ후반 들어 수출의 날 행사는 변화를 겪게 된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가 확대되면서 미국 및 유럽공동체(EC) 등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불공정 무역관행이나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등 통상마찰이 가열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주도해 수출 위주의 정책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해 1988년부터 수출의 날을 '무역의 날'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주관 기관도 코트라에서 한국무역협회로 바뀌었다.1960년대 중반에는 '수출은 국력의 총화'라는 말이 시대를 대변했다. 말 그대로 국가의 모든 역량은 수출증대로 집중됐다. 이 무렵 수출진흥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한 것은 1965년부터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해 매월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였다. 이 회의에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했다. 통상과 관계된 경제기획원 및 상공부 장관과 주요 간부들은 물론 수출업계와 금융기관 등 유관기관 대표들이 참석해 수출동향을 점검했다. 또한 수출증대를 위한 정책과 업계의 애로사항 등을 논의했다.박민규 기자 yushi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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