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노래 '무지개 너머 어딘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유명한 주디 갤런드 주연의 불멸의 클래식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1939)를 기억하는가. 녹색 피부의 엘파바는 사악한 서쪽 마녀였고, 금발의 글린다는 착한 남쪽 마녀였다. 그러나 비틀기가 크로스오버에서 트렌드가 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 Wicked'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성격을 정반대로 바꿔 놓았다.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오페라의 유령' 이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이끌며 9년째 흥행 1위를 유지 중인 작품이다. 전세계 관람 인원이 무려 3000만 명, 총 매출액은 25억 달러(한화 3조원)에 달하는 '위키드'는 본고장인 미국을 떠나 영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 해외 공연에서도 기록적인 성공을 목격했다. 상복도 유별났다. '위키드'는 뮤지컬계의 아카데미로 통하는 2003년 토니상에서 10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여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드라마리그상, 그래미상, 로렌스 올리비에 상 등 크고 작은 상들을 휩쓸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등 이른바 세계 4대 뮤지컬의 뒤를 잇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가 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토네이도가 덮친 캔자스시티의 10대 소녀 도로시가 마법 세계 '오즈'에 떨어져 사악한 마녀 엘파바를 물리치고 에메랄드 시티로 향한다는 설정의 모험담이다. 미국 작가 L. 프랭크 바움(1856~1919)이 창조한 텍스트는 이후 여러 차례 영화는 물론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상 장르로 리메이크됐다. 도로시가 주인공이었던 '오즈의 마법사'와는 달리 '위키드'의 주인공은 엘파바다. 뮤지컬 '위키드'는 지난 100년 동안 사랑 받은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엎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명의 스핀오프(Spin Off) 트릴로지를 원작으로 한다. 판타지의 주인공이 고난과 시련을 거쳐 도덕적 결함과 약점을 극복하고 영웅이 된다면 '위키드'의 엘파바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불완전하고 뒤틀린 실패자 마녀로 남아 고독 속에서 생을 마칠지라도 엘파바는 불의와 타협하려 하지 않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소설 '위키드'는 많은 단점의 소유자인 엘파바가 진정한 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성장 이야기다.다분히 철학적인 뉘앙스가 강한 원작에서 뮤지컬은 기본 골격만 가져왔다. 뮤지컬 '위키드'는 선과 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원작과는 달리 마녀이기 이전에 소녀인 엘파바의 내면에 집중한다. 영리한 선택이다. '오즈의 마법사'나 '위키드'의 원작 텍스트를 굳이 몰라도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깃털처럼 가벼운 동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품은 광대한 은유와 풍자의 정도는 놀랍다. 극 중 정치의 본질과 인류의 화합, 선과 악 등 심오한 주제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훌륭한 텍스트에 근사한 볼거리가 더해졌다. 영화 '포카혼타스' '이집트의 왕자'의 음악감독 스티븐 슈왈츠가 창조한 열아홉 곡의 넘버들은 신나고 극적이며 따뜻하다. 350벌의 의상, 무대 외관을 둘러싼 가로 6m의 용의 형상과 알루미늄 버블머신 등 콘테이너 박스 24개에 달하는 형형색색 무대 장치들은 기꺼이 관객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할 준비를 끝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은 바로 '위키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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