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7시 30분 부터 80분간 서울 혜화동 인근 소극장 '아름다운 극장'에서 '이문동 사람들'이란 연극이 펼쳐졌다. 노숙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극단 연필통의 창단공연으로 다섯달 동안 준비해 관객들에게 선보여진 것이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30일 저녁 9시. 서울 종로 혜화동 한 소극장이 눈물 바다를 이뤘다. 관객도 배우들도 다같이 울었다. 관람석 정원이 빼곡히 채워진 200명의 관객은 공연이 끝나고도 일어설 줄 몰랐다.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소리 없는 흐느낌이 뒤섞였다. 마지막 무대 인사를 하는 배우들의 얼굴엔 지난 다섯 달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극단 연필통의 첫번째 공연이다. 노숙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 시설에서 생활하며 자활을 꿈꾸는 쉼터인들. 그리고 쪽방촌 사람들이 모였다. 연극으로 필이 통한 사람들이다. 지난 1월 18일 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극단을 꾸렸다. 매주 수요일 오후 세시간씩 연기에 몰입 해왔다. 마지막 5월 한달은 매주 서너차례 모여 공연준비에 집중했다. 그동안 엠티도 가고, 배우 오디션도 진행하며 연습을 거듭했다. 이렇게 연필통의 연극 '이문동네 사람들'의 막이 올랐다. 이번 연극은 1980년대 중반, 서울 이문동의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세입자 네 가족의 얘기다. 지역개발이 한창인 시절 이 마을에도 재개발 소식과 퇴거명령이 닥쳐왔다. 하지만 마을의 위기는 힘겨운 삶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을 뭉치게 했다. 결국엔 철거당해 마을에서 내쫓겨 시골로 내려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그러나 함께 마음을 나누고 동네를 지키며 쌓인 정은 그들이 다시 살아가는 힘으로 승화됐다. 마을의 연장자로 실향민 오똘망 역을 맡아 열연한 은하별(남 50대)씨는 "30년 전 스무살 때 연극에 미쳐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대학로 극장에 설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면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잊혀진 추억들을 꺼내보게 됐고, 낮시간엔 일하고 저녁이후엔 연극연습을 하면서 지금 이렇게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특히 은 씨는 이번 할아버지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해 관객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전문 배우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은 씨는 준비 기간동안 밤에 잠도 안 자고 대본을 읽고 연기 연습에 몰입해왔다. 이번 공연을 통해 젊은 시절 배우의 꿈을 다시 펼쳤다. 술꾼이지만 정 많은 사나이로 구청장에게 '마을 재개발을 재검토 하라'며 구청 건물옥상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나브로 역을 맡은 오금철씨 역시 연극의 힘을 강조한다. 오 씨는 "연극의 힘은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해볼만 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철거용역업체 직원으로 단역을 맡은 정 모씨도 연극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정 씨는 "무대 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 큰 용기를 줬다"면서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던 가족들도 연극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배우들의 감동만큼 함께 연극을 만든 강사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마음도 같았다. 강사 홍서연씨는 "배우들이 연습해 온 과정을 내내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가장 행복한 관객이었다"면서 "우리가 만든 연극이 '바로 꿈에 대한 이야기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연극을 통해 삶을 치유하려는 사람들로 부터 관객들도 치유받은 혜화동 소극장의 초여름 밤이 깊어갔다. 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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