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많던 통화정책은 누가 다 먹었을까?
[아시아경제 이의철 기자]경기가 '좋다' 또는 '나쁘다', 아니면 '과열됐다' 또는 '침체됐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주관적이다. 재밌는 것은 정부가 경기 과열로 인해 손해 볼 게 없다는 점이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정부는 경기 과열을 선호한다. 정부는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껴지면 국민들은 집권 여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는 경기가 차가운 것보다는 다소(?) 과열되는 것을 선호한다. 거의 언제나. 문제는 '다소'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약간이라도 '못 미치면' 국민은 불편해한다. 자연히 여론도 악화된다. 반대로 '넘치면' 경기 과열을 우려해야 한다. 당장은 불만이 없지만 거품이라도 터지는 날엔 정부로서도 감당하기 힘들다. 정권이 넘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집권 여당을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법이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팸플릿,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샷이나 조사할 줄 알았지, 이런 데는 신경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저금리를 유지하는 통화정책은 집권 여당을 위한 선거운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기 부양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인플레이션은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실업률로 귀결되는 지표다. 잠재성장률을 추월한 경제성장은 미래의 과실을 먼저 따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Inflation fighter)'이다. 인플레이션은 경기가 호전될 것이란 기대 속에 투자와 소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날 때 생긴다. 공장을 더 짓고 투자를 더 하려다 보니 자금수요가 증가한다. 시중 이자율은 올라가고 소비는 활발해지며 물가는 뛴다. 경제를 신체에 비유한다면 운동을 할 때 몸에 미열이 나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때 중앙은행의 처방은 기준금리를 올려 경기의 과열을 막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의 단기금리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이렇게 높은 금리에 돈을 조달해서 공장을 지으면 과연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주식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의 고민도 시작된다. "이 정도 금리와 주식시장의 리스크를 감안하면 은행 예금이 낫지 않을까"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주춤거리면 사람들의 소비는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물가상승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중앙은행은 기대했던 정책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금리를 올리면 환율은 떨어진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우리나라 채권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환율이 떨어지면(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지고 수입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진다. 그러면 물가는 하락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ㆍ환율ㆍ물가의 '선순환 메커니즘'은 이렇게 완성된다. 내달 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2년 가까이 7명이 정원인 금융통회위원을 채우지 않고 운영되다가 빈 자리가 모두 채워진 후 처음으로 열리는 금통위다. 이달 초 금통위는 금리 동결을 결정해 10개월 연속 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갔다. 이제 막 총선이 끝났다. 대선은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금통위가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만큼 순진하다고 믿는 이들은 무척 순진한 거다. 통화정책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다. 그러나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물가 불안을 부추길 경우엔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 내달 10일 금통위가 또 금리를 동결해 11개월 연속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경우 금통위는 아주 스마트한 결정을 한 걸까, 아니면 아주 어리석은 결정을 한 걸까. 내달 금통위의 결정이 더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의철 기자 charli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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