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김지하 '칼아'

미련의 베를/오늘은 끊으리라/애틋한 눈길 올올에 서린/색색이 아리따운 속삭임에 서린 아쉬움/끊어 떠나리 칼아/모진 그 옛 스승아//내 것이 아닌 이 묶이운 기쁨/흙내 바랜 육신에 깊이/뿌리 드리운 이 끝없는 부질없는 길쌈의 버릇/한잔의 독한 술/넋을 판 날의 괴로움과 그 술이 짜이고/(……)미련의 베를 /끊어/알 수 없는 거리로 먼 벌판으로/아픈 저 허공으로 오늘은 떠나리라/칼아/모진 그 옛 스승아■ 검도를 배우던 때가 있었다. 나무토막같이 뻣뻣한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려는 노력이 어찌 쉽겠는가. 발바닥은 몇겹으로 벗겨져 나갔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엔 파김치가 되었다. 수없이 칼을 휘두르며 깨달은 건 온 몸이 칼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그러나 나는 칼이 되지 못했다. 칼끝의 섬광이 되지 못하고 칼날의 바람이 되지 못했다. 한눈을 팔고 방심을 하여 사부의 죽도가 등줄기와 어깨를 후려치는 걸 도와줬다. 이 세상에 와서 읽은, 시들 중에 가장 울림있는 시를 고르라면, 김지하의 시 '칼아'를 집어들겠다. 쾌도난마! 시는 생애를 따라온다. 그 시의 말들은 살아, 상황상황마다 살아움직이는 비유를 이루며 나를 만들어간다. 칼아. 그것은 나의 피, 나의 정신, 나의 사유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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