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칼럼]금융소비자보호원 구하기

[아시아경제 이주명 논설위원]국회의원들이 게을러서 좋은 것도 있다. 18대 국회가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핵심으로 한 금융소비자 보호 법안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채 총선을 맞았다. 이에 따라 오는 5월29일까지인 18대 국회 임기 안에 처리되기 어려워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소비자 보호 입법은 새로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전반적인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한 축으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것 같다. 멍청한 지휘관은 부지런한 것보다 게으른 것이 군 전력에 낫다는 군사 격언이 있는데, 금융소비자 보호 입법과 관련해서는 18대 국회의원들이 그 짝이다. 그들이 괜히 부지런을 떨어 금융관료들의 의도대로 금융소비자 보호 법안을 총선 전에 통과시키지 않아 다행이다. 그랬다면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융감독원 안에 설치되어 금융관료들의 밥그릇 기능이나 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는 시늉하는 수준에 그칠 우려가 있었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금융소비자 보호 법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이미 국회에는 옛 한나라당의 김영선ㆍ권택기 두 의원과 옛 민주당의 박선숙 의원이 각각 제출한 금융소비자 보호 법안이 계류 중이었다. 세 의원의 법안은 모두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독립기구로 설립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와 달리 정부의 법안은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감원 내부 조직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법안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위상ㆍ소속ㆍ권한을 놓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티격태격했다. 결국은 한통속인 두 금융관료 소집단 사이의 다툼일 뿐이었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의 근본 취지는 금융소비자 보호다. 그렇다면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는 기존 금융감독 조직에서 독립된 별도의 조직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기존 금융감독은 금융건전성 실현을 주목적으로 하는데, 이것과 금융소비자 보호는 상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건전성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수익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금융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199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미국ㆍ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쌍봉형(트윈 피크스)'으로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과 금융건전성 실현 조직을 대등한 두 봉우리로 세우는 것이다. 미국은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에 따라 지난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을 신설했다. 형식상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아래 설치됐지만 FRB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영국은 올해 기존 금융감독청(FSA)을 폐지하고 후속 기구의 하나로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전담할 금융행위규제청(FCA)을 신설할 예정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런 국제적 흐름에 거슬러 가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감원 안에 가두어 놓고 통제하려 한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보호원장 임면권을 갖겠다고 하고,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금융회사 검사 및 제재 권한을 금융소비자보호원에 넘겨주지 않겠다고 한다. 둘 다 '준독립' 형태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치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금융소비자보호원에 절대로 독립성을 허용할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았듯이 금융소비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약탈적 영업 행위를 방치하면 금융시장에는 물론이고 실물경제에도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예전보다 금융의 복잡성과 영향력이 대단히 커졌다. 이제 금융소비자 보호는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해 긴요한 일이 됐다. 금융소비자 보호 입법은 다음 국회가 이해 당사 기관인 금융위와 금감원을 배제하고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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