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명박 대통령이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관리 책임실명제 도입을 지시했다. 배추는 농림수산식품부 A국장, 석유는 지식경제부 B과장 등 품목별로 물가상한선과 담당자를 정해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신년연설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3%대 초반으로 잡겠다"고 선언한 데 이은 결연한 의지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연초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결과는 실패였다. 2008년 3월부터 따로 통계를 내며 관리한 서민생활 밀접 52개 품목의 'MB물가'는 지난해 7월 기준 2008년 3월보다 평균 22.6% 올랐다. 지난해에는 "기름값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최중경 전 지경부 장관이 "성의 표시라도 하라"며 정유사에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지난해 말에는 국세청이 나서 맥주 등 주류 가격 인상을 막았고, 공정거래위원회 창구지도로 라면ㆍ우유 등의 가격 인상이 보류되기도 했다. 금반지를 물가조사 품목에서 빼는 꼼수 지수개편까지 동원됐지만 물가상승률은 4%를 기록했다. 품목별 담당자를 정해 물가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1970년대식 발상이다. 각자 맡은 품목만 챙기면 큰 틀의 물가관리를 놓칠 수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수급안정보다 부처 힘을 동원한 팔 비틀기식 물가관리로 일시적으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야 있겠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후유증은 더 커진다. 더구나 중동정세 불안과 국제 원자재ㆍ곡물 가격 급등, 기상이변 등은 개별 공무원이 어쩌기 힘든 물가 변수다. 대통령은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면서 "물가 문제는 공직을 걸고 챙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고 '배추국장' 일가가 총동원돼 배추 농사를 지을까. '석유과장'은 서로 맡지 않으려 들 것이다. 물가가 오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돈값(금리)이 싸고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는 오르게 되어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뛴다. 금리와 환율, 재정집행 등 거시정책 수단을 놔둔 채 공무원의 개인기에 의존한 물가관리는 한계가 있다. 당장 상반기에 재정의 60%를 조기 집행하겠다는 경기부양 정책과 물가안정이 충돌할 수 있다. 금리ㆍ환율 등 거시정책과 함께 경쟁 촉진, 유통구조 선진화 등 미시정책을 꾸준히 펴나가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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