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략적 흥정으로 무산된 부자증세

여야가 어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별일 없는 한 합의안이 기획재정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연내 확정될 전망이다. 이로써 한나라당 쇄신파와 민주통합당이 한목소리로 억대 연봉의 고소득자나 대기업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해 온 '부자증세'는 무산됐다.한나라당이 이른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당내 쇄신파와 친박계 일부가 그동안 부자증세를 주장한 것은 그러면 '쇼'였다는 말인가. 부자증세를 없던 일로 하자는데 민주통합당이 합의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당 차원에서 국민 앞에 공언한 정책에 어긋나는 법안 처리를 하려면 그럴 만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 공당의 도리다.합의안을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절충한 흔적이 역력하다. 기존 법인세 최고세율 22%가 적용되는 과표기준을 정부안인 '500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낮춰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에만 20% 감세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한나라당이 주고 민주통합당이 받은 것이다. 가업상속 공제 한도를 정부안인 5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그 공제율을 100%에서 70%로 낮춘 것도 한나라당이 민주통합당에 준 선물이다. 그 대신 민주통합당은 최고세율 인상을 포기했다. 소득세와 법인세 둘 다에 최고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그 구간 세율을 각각 35%와 22%에서 40%와 25% 정도로 올려야 한다던 주장을 접은 것이다.이런 절충은 두 당의 정략적 거래로 보일 뿐이다. 국민 여론을 감안한 흔적도 없고, 합리적 논의의 결과인 것 같지도 않다. '버핏세'라 불리는 부자증세는 미국의 국가부채 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세제 개선 방향이고, 국내에서도 복지확대 논의와 결합되면서 폭넓은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소득세의 경우 과표구간이 15년째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동안 연 1억원 이상 소득자가 1만명 미만에서 30만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소득구조가 크게 바뀌어, 그렇잖아도 최고 과표구간의 상향 신설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두 당은 선거를 앞두고 표 잃을 짓은 피하자는 묵계를 실행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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