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잘해야 본전인 사람이라서 스스로를 많이 괴롭힌다”

<div class="blockquote">“주지훈을 극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적이 있다.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강한 존재감을 느꼈다. 이후 지인을 통해 그를 만났을 때는 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에 많이 놀랐는데, 특히 무대를 향한 마음이 경건하다.” 주지훈이 제대와 함께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의 복귀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의외라 했고, 누군가는 지난 사건의 빚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프로듀서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가 말하듯, 주지훈은 유난히 공연장에서 자주 목격되던 사람이었다.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오를 때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그 시간동안 프레임 밖에서 눈으로 좇으며 때를 기다렸다. 이제 그 응축된 에너지가 던져질 때다. “사죄를 해야 한다면 스스로가 가장 잘 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은 길”이라는 절실함과 서른이 준 여유로 시작되는 주지훈의 제 2라운드.
제대한지 열흘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민간인으로서의 삶이 실감이 나나.주지훈: 눈 한 번 감았다 떴더니 3년이 지나간 것 같다. 모든 군인이 그렇듯 장기간 말년휴가를 나와서 이것저것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 제대한 것이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눈앞에서 플래시가 팡팡 터지니까 이제야 좀 실감이 난다. <H3>“뮤지컬들을 보면서 그 무대에 서있는 나를 상상했다”</H3>
복귀작으로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선택했다. 의외라는 평이 가장 많다.주지훈: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받은 대본 중에서 가장 공감을 느낀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닥터 지바고>는 원작에 대한 후광 같은 게 있기 마련이고 기대치를 갖고 대본을 봤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다 담겨있었다. 유리 지바고는 몰락귀족인데다 의사이면서 시인이고, 큰 전쟁도 겪는다. 인생의 풍파가 많아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웃음) 굉장히 큰 사건들 속에서도 그의 인생관이 묻히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리얼리티를 느꼈다. 요즘 화려하고 자극적인 장르의 작품들이 많은데, 그에 비해 <닥터 지바고>는 처음 봤을 때 밋밋할 수도 있다. 수채화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지훈을 한 번씩은 봤을 정도로 공연장에 자주 출몰한다. 언제부터 무대에 대한 애정이 시작됐나.주지훈: 모델 출신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무대를 좋아한다. 영화 <앤티크>에서 뮤지컬 장면을 많이 찍었고, 이후에 뮤지컬 <돈 주앙>을 했다. 라이브로 연기한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온전히 연습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지만, 인내가 길고 쓰면 쓸수록 열매는 달지 않나. 참 맛있었다. 그러면서 지인들이 생겼고, 배우들이 공연하는 걸 보러 다녔다. 보다보니 참 재밌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맘에 드는 극을 발견하면 내가 거기에 있는 상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첫 뮤지컬이었던 <돈 주앙>이 끝나고 ‘무대를 안아주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치러냈다는 안도의 마음이었나.주지훈: <돈 주앙>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만으로 시작됐다. 모든 작품이 힘들지만 <돈 주앙>은 신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작품이다. 내가 소화해야 하는 곡이 18곡이었는데, 장르도 굉장히 다양해서 성대의 위치를 3~4번 바꿔야 할 정도였다. 동료배우들에게 나 좀 살려달라고 하소연 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주변에서도 첫 작품을 너무 힘든 걸 했다고 많이 안타까워했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많은 작품이라서 함께 했던 (김)다현이 형이나 (강)태을이 형은 사고도 참 많았었다. 그거야말로 복불복인 셈인데, 난 다행히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공연 끝나고 무대에 무릎 꿇고 앉아서 무대한테 기도를 한 적이 있다. 첫 작품인데 내 능력 밖의 실수가 나에게 없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그게 나에게는 어떤 의식 같은 게 됐다. <생명의 항해>때도 그랬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노래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노래로는 당해낼 자가 없는 홍광호와 더블캐스팅인데.주지훈: 군 복무기간 동안 꾸준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아주 하드하게 받은 건 아니니까 아직 너무 기대하지 마라. (웃음) 홍광호의 노래는 남자가 들어도 설렌다. 난 배움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많이 없다. 못하니까 배워야지. 난 좋다. 홍광호가 누구한테 공짜로 노래를 가르쳐주겠나! 오래간만에 보이는 모습이라서 좀 살살하라고 해도 목숨을 걸 거다. <H3>“겁이 많았었는데 서른이 되면서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다”</H3>
영화나 드라마 작업을 주로 했던 배우들이 뮤지컬 작업을 할 때 아무래도 노래보다 연기로 승부를 보고 싶어 한다. <돈 주앙> 당시에도 ‘엔딩 하나만큼은 내 걸로 가져가자’라는 각오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주지훈: 노래도 중요하지만, 고저를 두자면 난 연기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노래도 음이 실린 연기인 거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장르성에 대한 막이 없어졌다. 그냥 난 연기자고 각 상황에 공감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대극장보다는 소극장에서 좀 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나.주지훈: 대극장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는 맨 뒤에 있는 마지막 1500번째 관객까지 나를 보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괴리감이 컸다. 그러다가 연습이 쌓이면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잘 생각해보면 전 세계 70억 인구 중 한 명 정도는 아주 액팅이 큰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을 특이하다고 생각해도 과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래, 내가 연습량 늘리고 나 스스로 리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전달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다. 작은 걸 키우는 건 거의 말이 안 되지만, 큰 초콜릿을 잘라서 조각내는 건 쉽다. 그리고 대극장공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닥터 지바고>도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배우,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마이웨이를 가야하지만, 덕분에 끌려갈 수도 있으니 축복이다. 하지만 여전히 디테일적인 연기에 대한 욕망이 있지 않겠나.주지훈: 그건 내가 나를 좀 더 괴롭히면 된다. 동선을 비롯해 모든 무대 위에서의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내가 잘 안 보이는 신이나, 큰 액팅이 없는 신에서는 영화 찍을 때랑 똑같이 한다. 그게 보이든 안 보이든. 내 몸만 좀 더 고생하고 애쓰면 아쉽진 않다. 하지만 ‘그게 좀 보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공연장에는 좋은 제도가 있지 않나. 오페라글라스 대여. (웃음)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도 연기하겠다’ 라는 셈인데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인가보다.주지훈: 맞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감성적으로 잘 안 되더라. 난 굉장히 운이 좋은 배우다. 드라마도, 영화도, 뮤지컬도 모두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되게 부러운 일이지만 굉장히 힘든 일이고, 내가 아닌 누가 그렇게 된 걸 내가 봤을 때 굉장히 안쓰러울 것 같다. 왜냐면 우리는 좋든 나쁘든 어쨌건 평가를 받으니까. 굳이 남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내가 나를 모니터 하거나 내가 아주 믿는 사람들의 평가들도 단계를 거치면서 받아야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그 데미지를 단계가 없이 받고, 견뎌나가야 했다. <궁> 찍을 때 느낀 건데, 데뷔작이라고 해서 아무도 ‘쟨 신인이니까’라고 봐주지 않더라. 알고 시작했는데 훨씬 심각했었다. 그래서 뮤지컬 시작할 때도 그렇게 목숨 걸고 했다. 목숨 걸고 해봤자 본전이다. 잘해야 본전인 사람이라서 그게 성격이 됐다. 물론 나도 행복하고 너무 감사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다. 아주 짙은 그림자들이 있다. 그래도 올해로 서른이 됐으니, 그런 성격에도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주지훈: 과거엔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방향을 정해서 달려갔었다. 강박관념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조금 편해졌다. 세상을 넓게 보게 됐고, 그래서 여전히 다작을 하지는 않겠지만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은 작업들을 할 것 같다. 군 복무하는 중 1년간 회사도 정리하고 혼자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홀가분하게 있었고, 일상적인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여유가 생겼다. 과거에는 연기만 하고 싶었었고, 팬들이 주는 사랑이 너무 크면 감당이 안 돼서 외면한 적도 있었다. 겁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다. 앞서 공연을 보며 무대에 있는 자신을 상상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인가. 다음 스텝의 힌트가 될 것 같다.주지훈: 아아! 오디뮤지컬 작품들이 좋아요. 하하하하하. 공연을 되게 좋아한다. 뮤지컬은 영화처럼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아니고 굉장히 장기공연을 하지 않나. 그 시간동안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관객과 호흡을 맞춰나가니까 평균적으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정말 좋더라. 네임벨류 있는 작품들은 다 재밌었다. 더 많은 네임벨류 있는 무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주지훈: 없어도! (웃음)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편집팀 글. 장경진 thre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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