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손미라 ‘내 마음의 풍경’ 연작
내 마음의 풍경 80×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화면은 단순하면서도 선명히 압축된 겹겹 산(山)임에도 깊은 인식세계를 열어놓고 있다. 아마도 새가 날고 오솔길을 걷고 꽃피지 않았더라면 필경 해원하지 못했으리라!그날 아침은 엄숙함이 감돌았다. 잔추(殘秋)의 아쉬움에 유랑처럼 서성이던 배들은 때 이른 싸락눈에 잠을 깼다. 자욱한 물안개 사이 생명의 젖줄은 싱그럽고도 온화한 냉기를 뿜어댔다. 누군가 꽃잎 속에 정성스레 촛불을 올려놓은 소망…. 코발트 빛 아침햇살이 꽃물결 향연에 찬란히 쏟아졌다. 그때, 이방인이 낯선 길을 떠나고 있었다.깨알 같은 섬 하나 그대 마음 속 행복입니까개울가 쑥부쟁이를 지나니 바람결엔 진한 감국(甘菊)향이 절정이었다. 바다 빛깔을 산에 풀어놓았나, 남청색 칼잎용담 꽃이 친절히 길을 일러준다. 불현 듯 젊은 날 단숨에 써내려 간 하얀 종이 위 애절한 로망스가 나풀거리듯 아득히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내 마음의 풍경 80×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
달빛이 수줍게 드리운 초저녁. 담갈색 회상(回想)이 잦아든다. 그러면 달맞이꽃은 점점 선연히 진노랑으로 물들고 우아하던 노란 꽃밥은 저도 모르게 외로운 몸짓을 그만 잔바람에 들키고 말았다. “한 아이가 돌을 던져놓고/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돌 같던 첫사랑도 저리했으리”<이홍섭 詩, 달맞이 꽃>새는 늘 함께했다. 가족을 이루고 사랑을 나누며 영역을 지키는 판타지아는 맑은 목청의 암수가 빚은 낭만의 악곡이었다. 그런 어느 날, 상수리나무 숲 속 어미 새가 홀로 새끼들을 세상 밖으로 보내고 있었다. 둥지서 난생처음 허공에 몸을 던져 두려움에 떠는 새끼 옆을 어미는 스스로 날개를 펴게 바짝 붙어 비행(飛行)했다.
내 마음의 풍경 1m×1m Mixed media on canvas, 2010.
그러길 몇 차례. 땀으로 범벅이 된 새는 탕자(蕩子)가 되어 찬 서리 내리는 저 봉오리 넘어 돌아올 것만 같아 휫휫 아빠 새를 향한 비애감 젖은 애련(愛戀)의 노래를, 어찌 부조리하다할 것인가!세모꼴이며 귀퉁이 닳은 몽돌처럼 구불구불한 산에 가을이 찾아들면 뒷산은 겨울 오고 또 그 뒤엔 새봄 신록이 솟았다.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칼 부세(Karl Busse) 詩, 저 산 너머에>스스로 시간의 궤적을 따라 순리의 옷으로 바꿔 입는 산 뒤의 산. 이른바 산은, 말이 없고 울림은 컸다. 어느 누가 세모 산에 꽃이 피고 우람한 산등성엔 무지개가 뜬다 했는가. 편견은 가없고 순환은 흘러 빈 산, 마음일진데. 그런 저 산 너머 또 그 너머 일망무제(一望無際) 깨알 같은 섬 하나. 혹여 오늘 그대 마음 속 행복풍경은 아니십니까?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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