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상비약 슈퍼판매 '산 넘어 산'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약 부작용 통계자료'다. 올 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예년에는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는 약에 대해 보건당국이 주의를 기울여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면, 올 해는 "이런 위험한 약을 슈퍼에서 팔게 해도 되는 거냐"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복지위 의원 대다수가 이 논리를 들어 가정상비약 슈퍼판매에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약사법 개정안은 국회 벽을 넘지 못할 허망한 위기에 처했다. 타이레놀이 편의점에서 팔리면 정말 '재앙'이 올까. 약사 출신 모 의원 말대로 박카스 카페인 중독자들이 속출할까. 가정상비약 슈퍼판매를 찬성하는 쪽은 모두 '국민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제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들일까. "타이레놀 부작용은 2년간 무려 1000건"이란 보도자료를 내놓고 공포감을 조장한 의원들은 국민을 우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작용 보고건수 1위란 말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약'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타이레놀 유통량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수 있으며, 판매사의 부작용 신고체계가 타사보다 잘 돼 있어 그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한 때 이 분야 1위를 달리던 '비아그라'의 판매사는 "열심히 보고했더니 어느새 가장 나쁜 약이 돼버렸다"고 억울해했다. 타이레놀의 상대적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연구자료를 인용해야 함을 국회의원들도 모르지 않는다. 과학적이지 않은 근거를 자극적으로 사용해 궤변을 펼친 그들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위험한 약을 슈퍼에서 팔아도 되냐"는 질문이 황당한 이유는 또 있다. 2년간 발생한 부작용 1000건은 누가 팔다 생긴 것인가. 이는 약국에 부작용 발생을 억제하는 기능이 미미하다는 방증일 뿐이다. 그나마 약국에서 팔리니 부작용이 1000건에 그쳤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한 번이라도 사 본 사람은 그 주장의 허무맹랑함을 잘 알 것이다. 부작용 1000건에는 통제가 어려운 불가피한 것과 예방 가능한 사례가 뒤섞여 있다. 우리의 관심은 두 번째 부작용을 최대한 줄일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해결책이 '약국 독점 판매'가 될 수 없음을 똑똑해진 국민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 현재 논란의 출발이다.의약품 판매를 약국으로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규제다. 국민은 그 규제의 필요성에 동의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동의 내용도 바뀔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후속 대책으로 해결할 문제다. 간단한 약은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게 하자는 사회적 요구는 70%에 육박한다. 국민의 요구는 크지만 한 번 내어준 기득권은 되찾아 오기가 쉽지 않다. 국민이 14년 걸려 힘겹게 정부를 움직였더니 이번엔 국민의 대표가 훼방 놓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신범수 기자 answ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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