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정전으로 결국...비운의 최중경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2009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은 장관 재직할때나 떠날때도 "나는 운(運)이 좋았다"고 되뇌였다. 최 장관은 정말 운이 좋았다. 재임기간 중 원전 첫 수출과 중견기업육성법, 산업융학촉진법, 동반성장대책, 세계시장 선점 10대 핵심소재, 전략기획단 설립및 연구개발 투명성 강화대책 등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올 만한 성과를 냈다. 1월에 취임한 최중경 장관은 사정이 달랐다. 집권 후반기가 되다보니 무언가 눈에 보이고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수 없었다. 기존 대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국정 후반비를 잘 마무리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 사이 물가가 폭등했고 동반성장에 대한 파열음이 커졌다. 최근에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폭풍을 맞닥뜨렸다. 9월 15일에는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 정전사태에 책임론까지 짊어지게 됐다.최 장관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순환정전을 뒤늦게 보고 받았다. 그것도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자리에서였다. 예비력이 급락하고 있다거나, 긴급상황이라거나, 순환단전이 필요하다거나 등 장관으로서 정책적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상황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2900여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히지 않았거나 병원 등지에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면 9.15정전에 대한 비판여론의 수위가 조금은 낮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었다. 결국 정부합동조사에서 인재(人災)와 관재(官災)의 산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지경부에 책임이 있고 관련자의 엄중문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리에 연연 않겠다던 최 장관에 대해 정치권에서 사퇴압력이 커졌고 여론도 그랬다. 26일 정부합동조사 발표 이후 청와대에서 다시 한번 장관사퇴요구가 나왔다. 27일 최중경 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에 이명박 대통령에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 최중경 장관의 기구한 낙마는 이번이 세 번째다. 최장관은 지난 2003년 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환율방어를 하다가 입은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현정부 들어 재정부 1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뒤 강만수 장관과 '최-강'라인을 형성했으나 역시 고환율 논란으로 4개월만에 물러났다. 이후 주 필리핀대사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부활했고 1월에는 비(非)지경부 출신으로 지경부 장관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그는 정유사에 대한 기름값인하 압박등 특유의 공격적인 언행을 보여왔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비롯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을 놓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대립하는 등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최 장관 특유의 강성 언행과 정치권과의 마찰, 총선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민심다독이기 등이 종합적으로 묶여 이번 경질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경호 기자 gungh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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