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토크】⑨ 제 이름은 명품입니다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H3>명품에 열광하는 한국분께 명품이 쓴 편지</H3>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명품 핸드백입니다. 고향은 프랑스죠. 아, 그러나 저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스페인에서 왔습니다. 저는 경력 30년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분은 꼬박 석 달 동안 저만 만들었죠. 참, 가죽이 다듬어지고 염색을 거치는 과정까지 더하면 제가 탄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꽤 자부심이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존재니까요. 예술품이라는 자부심이 들기도 합니다. 제 옆에서 모양을 갖춰가던 다른 디자인의 백은 중간에 폐기됐습니다. 가죽에 아주 미세한 상처가 있었다나요.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경영진들은 엄격했습니다. 철저한 관리만이 브랜드를 살리는 길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저는 100% 핸드 메이드로 만들어져 몸값이 정말 비싼 편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는 저 말고도 명품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많은데 대부분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모두 ‘명품’이라 불리죠. 때로 억울할 때도 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넘어갑니다. 제 상황은 조금 특별하답니다. 매장에 놓여지지 않고 바로 새로운 주인께로 갑니다. 오래 전부터 저를 기다린 주인께로 가기로 약속되어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국인이 명품을 사랑한다고. 직접 와보니 그 열기가 상상 이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거구요. 며칠째 방송과 신문, 인터넷엔 저와 친구들, 그러니까 명품이라 불리는 우리가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런 일은 자주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한국인께서 명품을 유별나게 사랑해주시는 수치가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가계 지출 중 5%가 명품 소비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명품을 유난히 사랑하는 것으로 소문난 일본이 4%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인의 우월성은 명품 사랑에서도 일본을 이겼네요.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사실 좀 씁쓸합니다. 온통 부정적 얘기가 따라오니까요. 팔 때와 달리 A/S는 엉망이라고, 돈은 많이 벌어가면서 기부활동하나 안하는 싸가지라고 저희에게 돌을 던집니다. <H3>명품은 필수품이 아닌데 왜 끝없이 명품을 얘기하는가?대한민국은 명품 권하는 사회!</H3>그런데 명품얘기가 될 때마다 명품은 저절로 홍보 아닌 홍보가 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써야 이름 한번 온전히 불려지기 힘든 방송과 신문에 명품 브랜드는 손쉽게 오르내리면서 저희를 몰랐던 분들께 저희의 존재를 확실히 알릴 수 있습니다.그러면서 명품 하나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분위기가 연출되어 많은 분들이 가격을 궁금해하고,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에 허리띠를 조르고 지갑을 엽니다. 막장 불륜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열심히 보는 그런 심리 아닐까요? 명품이라는 이유로 실컷 욕하면서 명품 하나 없으면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그런 분위기 말이지요. 최근엔 저희를 돈 내고 대여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몰랐던 분들은 이제부터 돈을 내고라도 명품을 빌려야겠답니다.
그런데 명품으로 사는 저는 한국인의 유별난 사랑이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명품을 갖기 위해 빚을 내는 분들, 카드빚을 막기 위해 절도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런 분이 주인이 되는 것을 원하는 명품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요? 명품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한심해하는 시선을 받아내는 것도 싫습니다. 게다가 ‘이거 짝퉁이야?’라는 질문이라도 받을 때는 폭발할 지경이라는 명품도 있습니다. 심지어 쇼핑봉투까지 짝퉁을 만들어 판매하는 걸 보면 정말 충격입니다. 한국 교수님 한 분이 제 친구 (=명품 백)을 구입해 부인께 선물했다기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부인은 “내가 명품 백이나 드는 한심한 여자로 보이느냐. 당장 환불해와라” 했다는군요. 왜 저희를 든 사람이 한심한 여자일까요? 그런데 왜 저를 그렇게 끝도 없이 열망하는 것일까요?저에겐 또 다른 궁금증이 있습니다. 한국 패션 브랜드 사장님은 명품을 만들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장님들은 호시탐탐 유명 브랜드를 수입해 판매하거나, 저희와 비슷한 디자인을 베끼는 일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저희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백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엄격한 품질 관리와 연구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거가 모여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전시회도 갖고, 보물처럼 대접도 받습니다. 미술 작품을 거래하는 경매에 등장해 엄청 비씬 가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품이라는 얘기를 듣는거구요.
과연 한국에는 이런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백화점에는 한국 브랜드가 없다고 한탄을 합니다. 패션을 떠나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부착한 명품이 많습니다. 만일 패션에서도 한국산 명품을 만들고 싶다면 지금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해외 브랜드와의 라이센스로 시장을 확대한다고 패션강국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브랜드 컨셉을 유지하고 과거 역사를 모으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저희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게 아니라 전통을 쌓아간다는 자부심에서 엄청난 돈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싸가지 없게 행동했다면 반성하고 개선해야죠. 이미 본사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명품의 이름으로 태어나 보통 제품만도 못한 손가락질 받으며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우리들. 저는 대한민국에서 명품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 고민됩니다. 경영진들은 한국에서 팔릴 더 비싼 물건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저희가 언론을 장식하면 우리를 몰랐던 분들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될겁니다.저희가 많이 팔리면 브랜드 경영진은 좋아하겠죠. 참, 명품 브랜드 본사에서는 한국 지사장으로 발령받으면 승승장구의 길을 보장받는다고 좋아합니다. 매년 명품 시장이 놀라울만큼 성장하니까요. 저희를 선택한 분들이 존중받았으면 합니다. 명품을 간직한 분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이 가져서, 없으면 뒤쳐질 것 같아서 무작정 사고 보자는 식은 명품이 원하는 일도, 한국 소비자에게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겁니다.박지선 기자 sun0727@<ⓒ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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