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효진기자
사진. 채기원
편집. 장경진
“감정들이 정확하게 대사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여서 스펀지에 물이 삭- 스며들듯이”
그런데 원래는 남자들의 우정 이야기를 그린 <밤안개>에 출연하려다 <푸른 소금>으로 넘어왔다고 들었다.송강호: 예전부터 이현승 감독님과 꼭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2008년 가을쯤 <박쥐> 촬영 막바지에 만나서 <밤안개>를 하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진행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아유, 감독님, 제가 어떤 영화든 할게요. 편안하게 (준비)하세요”라고 이야기하다가 2년 전 쯤 감독님이 새로 쓰신 <푸른 소금>에 합류하게 됐고, 그때부터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역시 여자배우가 딱 나오니까... (웃음) 그런데 워낙 준비가 길어지다 보니 “감독님, 몇 달만 기다리세요” 이렇게 말하고 중간에 <의형제>를 찍긴 했다. (웃음) 그만큼 이현승 감독과 작업하고 싶었던 이유는 뭔가.송강호: 다른 감독님들의 영상세계와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그대 안의 블루>나 <시월애>나, 당시로썬 굉장히 모던하고 스타일리쉬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영화 속에 녹아드는 인물들도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과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전직 조직폭력배 보스지만 손을 씻고 나와 요리를 배우면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 하는 윤두헌이라는 인물에 특별히 매력을 느낀 지점이 있나.송강호: 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약간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신세경이 연기한 조세빈과 윤두헌이 만나 서로에 대한 감정들을 어떤 때는 아주 농밀하게, 또 어떤 때는 유머러스하고 찰지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다보니 두헌에 대한 것들이 처음부터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뭔가 은은한 느낌이랄까. 사랑이다, 우정이다 하는 감정들이 정확하게 대사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여서 스펀지에 물이 삭- 스며들듯이, 나중에 그 감정들이 스며든다.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나 <의형제>의 이한규 등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의 캐릭터가 뚜렷했다면, 윤두헌은 이렇게 스펀지 같은 느낌이 굉장히 새로웠다. 그렇게 다소 모호한 인물을 해석하고 연기하는 과정은 어땠나.송강호: 윤두헌은 전직 조직폭력배 보스인데, 그렇다고 근육이 우락부락해서 싸움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과연 일상적인 표현인 걸까.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서 몇 달 동안 근육을 키우고, 옷을 딱 벗었을 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와, 진짜 살벌한데? 진짜 보스 같은데?”라고 말하지 않으면 보스 같지 않은 걸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현장에서 감독님이 “윤두헌이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지”라고 말씀하시면, ‘윤두헌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표현을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감독님이 갖고 계신 생각과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 이번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하나 탁, 보여주는 게 있나. 송강호: 특별한 어떤 장면이 있다기보다는 윤두헌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어떤 느낌을 스스로 가지고 접근을 했다. 완전히 그 인물이 되는 배우가 있는 반면, 내 경우에는 그 인물에게 다가가는 쪽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형사, 국정원 요원, 조폭 등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연기했지만 그들 모두 송강호라는 배우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극과 극의 인물들이 결국 송강호라는 분모로 묶일 수 있는 건 어째서일까.송강호: 배우들마다 연기 스타일이 다른데, 어떤 게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순 없다. 그 배우한텐 그게 정답인 거니까. 단지 나는 인물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그 인물의 외형보다는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지점이 있다. 어떤 게 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일상적’인 것일지 항상 고민을 한다.기자 역할이라면 컴퓨터나 수첩, 녹음기를 들고 이렇게 있는 게 본질, 일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일상적이긴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거고, 우리가 모르는 일상이라는 게 있지 않나. 기자의 본질은 또 따로 있다는 거지. 그걸 찾는 거다. 겉모습보다는 ‘그’ 기자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하나 탁 보여줬을 때 관객들은 감동을 받고 감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그런 부분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질 텐데, 애드리브에 대한 기준은 어떤가. 송강호: 작품마다 다르다. <박쥐> 같은 경우 박찬욱 감독이 쓴 콘티와 대사를 존중하는 게 작품의 원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애드리브를 하지 않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대사를 했다. <밀양>도 그랬고. 반면에 현장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푸른 소금>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들을 찍을 때는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작품의 범주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걸 원하되, 그 중에서 진짜 보석 같은 애드리브들을 건져 내는 작업을 하는 편이다. 그게 작품의 틀을 벗어나거나 작품을 훼손하면 안 되니까. 그런 걸 조절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자신을 믿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게 믿기 시작한 순간은 언제인가.송강호 : 사실 데뷔는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지만 그땐 너무 단역이어서, 진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연기를 했다. 이렇게 말하면 홍상수 감독님이 서운해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그러다가 이제 제대로 영화연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첫 작품이 97년에 개봉한 <초록물고기>였는데, 운 좋게도 이창동 감독님, 한석규 선배님처럼 좋은 분들과 작업을 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H3>“처음부터 끝까지 배꼽 잡고 웃는 영화도 하고 싶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