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유로주고 1010억 유로 받아가는 데 양털깎기 아니라고?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전세계 온갖 상품에 투자를 하면서 돈을 버는 유럽과 미국의 투자자들은 양털깎기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양털깎기’(Fleecing of the Flock)란 양의 털이 자라는 대로 뒀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털을 깎아서 수익을 챙긴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저자인 중국의 쑹훙빙이 자산시장의 보이지 않는 메카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 헤지펀드나 은행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 등 구미의 돈많은 투자자들은 수익을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했을 뿐이며,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서는 담보를 요구하고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지 않을 수 없다며 양털깎기라는 지적에 거세게 반대하기 일쑤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양털깎기란 말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리스를 한번 보자. BNP파리바 등 그리스 국채 채권자들은 프랑스 정부가 제안한 이른바 그리스판 브래디 플랜에 따른 그리스 국채 만기 연장을 논의중이다. ◆프랑스 제안의 골자, 그리스 국채의 50%만 만기 연장한다=프랑스 제안에 따르면 올해 중반부터 2014년 중반까지 만기가 되는 그리스 국채에 대해 은행과 보험회사, 자산운용사 등 채권자들은 30%만 현금으로 상환받고, 70%는 만기를 연장한다. 만기가 연장된 그리스 국채의 50%는 30년 만기 그리스 신규 국채에 다시 투자된다. 이게 그리스가 순수하게 받는 몫이다.만기 연장분의 20%는 일종의 보증회사인 특수목적기구(SPV)로 넘어간다. SPV는 이를 담보제공자인 독일이나 유럽투자은행(EIB),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담보제공자에 제공한다. 이들은 20%를 받는 대가로 30년 만기 제로 금리(0%)의 초우량 채권을 발행해 SPV에 넘긴다. SPV는 이를 담보로 그리스가 발행하는 30년 만기 신규국채의 보증재원으로 사용한다.◆그리스는 300억 유로만 만기 연장해=이달부터 2014년 6월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그리스 국채 가운데 민간부문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는 605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프랑스 제안안에 은행 등 민간 채권자가 동의한다고 할 경우 그리스 정부는 딱 50%만 만기를 연장받을 수 있다. 요컨대 300억 유로만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30%는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고 나머지 20%는 담보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채권자들이 동의할지 모르지만 채권자들은 적어도 30%는 현금으로 챙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를 못챙기는 것은 아니다. 만기가 30년으로 크게 늘어나고 우량 채권의 담보를 제공받는 그리스 국채로 돌려받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파이낸셜타임스는 이에 대해 “이 방안은 유럽 납세자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부담을 프랑스와 독일은행으로 이전한 것이며 시간을 번 것”이라고 평가했다.◆채권단 유로 빌려주고 1010억 유로 받는다=FT는 이 방안을 모든 채권자들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크게 손해볼 게 없는 장사라고 평가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이 방안은 결코 그리스에게는 싼 게 아니다. 프랑스 방안은 그리스가 만기 연장분의 단 50%만 받는 것을 가정한다. 그러면서도 만기도래 채권의 100%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이자 또한 매우 높다. 만기 연장 국채 이자는 연리 5.5%로 임시로 정해졌다. 여기에다 그리스 경제성장률에 따라 최고 2.5%를 추가하는 것으로 돼 있다. 말하자면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 경제가 급성장하면 최고 8%의 국채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채 이자는 그리스가 만기연장을 받는 300억 유로가 아니라 만기가 돌아오는 전액에 대해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한 그리스가 물어야 할 이자는 연리 11%에 이른다. 이는 지난 달 29일 거래된 30년 만기 그리스 국채 수익률 10.99%보다 높다. 통상 연리 7~8%조차 계속해서 지급하기 어렵다고 국제 투자자들의 판단을 따를 경우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자율이 아닐 수 없다.그렇더라도 이런 계산을 따를 경우 민간 채권단은 두둑한 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FT는 그리스가 향후 30년 동안 연평균 2.5% 성장한고 가정할 경우 민간 채권단은 300억 유로를 빌려주고 30년 동안 1010억 유로를 이자로 받는다고 지적했다.◆이게 양털깎기 아니고 뭔가?=FT는 여기에 더 얄미운 말을 던진다. 그리스 경제가 위축되면 국채 이자율이 낮아지며 성장률이 2%를 밑돌면 국채 수익률은 시장금리를 밑도는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프랑스제안은 철저하게 프랑스 은행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그리스 국채에 대한 유럽 은행들의 익스포져(노출액)는 2010년 말 기준으로 520억 달러(2010년 말 기준) 인데 이중 독일은행이 230억 달러로 가장 많고 프랑스 은행이 150억 달러로 두번째로 많다. 독일은 대부분 국영은행과 펀드 몫이어서 프랑스가 가장 많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유럽 채권단은 국가든 은행이든 빚잔치를 하는 그리스를 상대로 양털깎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박희준 기자 jacklond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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