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Special] '협상장에 갈 땐 손자병법을 끼고가라'

2007년 1월9일 샌프란시스코.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손을 들어올렸습니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음악을 틀 수 있습니다. 화면이 크고, 사진 앨범도 괜찮습니다. 스피커도 내장돼 있고. 비디오도 볼 수 있어요. 이게 아이팟입니다" 잡스는 아이팟의 장점을 늘어놨습니다. 이것만 봐서는 기껏해야 신형 아이팟 소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휴대폰을 재창조했습니다." 아이폰이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잡스가 음악기기 아이팟을 개선하다가 '하나 더(one more thing)' 붙인 게 휴대폰 기능입니다. 휴대폰에 더 많은 기능을 붙이는 데만 골몰해 있던 경쟁자들과 정반대로 창의적인 발상을 한 것입니다. 그런 역발상으로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습니다. 아시아경제신문이 오늘부터 국내외 경영의 '구루'(GURUㆍ대스승)들을 모셔 독자들에게 '하나 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보고서'는 세계 경제의 골칫덩어리로 떠오른 '인플레이션'을 개별 기업입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드립니다. 또 첫 지상 강의를 맡은 스티븐 헤이포드 미국 켈리스쿨 교수는 '손자병법으로 배우는 협상론'으로 여러분의 실전 경험을 넓혀드릴 것입니다.

스티븐 헤이포드 미국 인디애나대학 켈리스쿨 교수

협상장에 들어가야 하는 리더는 어떤 전략과 기술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손자병법은 고단한 리더에게 몇 가지 교훈을 던져 준다. 리더와 부하가 한마음으로 통할 수 있도록 '도'를 내세우는 손자병법의 틀을 이해하면 협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편 '始計'손자병법 첫머리에서 손자는 협상 전략을 평가하는 요소로 ▲도(道) ▲기후 ▲지리 ▲리더십 ▲규율의 5가지를 든다. 협상전략 평가요소를 통해 실제 협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평가하란 뜻이다. 손자가 들고 있는 협상전략 평가요소는 요즘으로 치면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원인과 협상 상대의 신념과 원칙, 환경, 스타일 등으로 다시 풀어낼 수 있다. 손자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리더는 반드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 가운데 가장 핵심은 '도(道)'다. 도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손자는 “전쟁을 맞이하는 백성들이 군주와 똑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협상에 나서는 리더와 부하의 의지가 통합된 상태가 도를 이룬 상태인 것이다.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와 아래가 서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장기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리더는 도를 이루기 위해, 다시 말해서 의지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리더십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분석해야 한다.손자는 리더십 효과 분석의 도구 역시 제공하고 있다. 리더는 지(智)와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의 다섯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 손자가 강조하는 덕목은 용(勇)이다. 용기란 뭘까? 성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려는 의지다. 위험을 무릅쓴다는 건 실패를 감수한다는 뜻이다. 용기는 구체적으로 '실패할 용기릮'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협상장에 들어선 대표뿐만 아니라 그에게 전권을 맡긴 최고경영자(CEO)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실패를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란 뜻과 똑같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전쟁에 패한 장수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전쟁에 나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손자의 지적이다. 현 시대에도 통용되는 진리다. 실패했다고 잘라버리면 부하들이 실패에서 배우지를 못한다. 따라서 용기가 있다면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고, 리더와 부하의 의지가 통합돼 도를 이룬 상황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리더의 덕목 가운데 인과 엄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자하면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고, 엄격하기만 하면 부하들이 따르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사랑과 공포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하나만 선택한다면 부하들이 공포스러워하기를 택하라”고 말한다. “증오를 받아선 안 된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따라서 리더는 인과 엄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부하들이 협상장에서 따른다.◆2편 '作戰'손자는 전쟁이 길어지면 안 된다고 한다. “싸움을 질질 끌면 병사들이 피로해지고 사기가 꺾이고, 적이 성을 공격하면 병력을 잃는다. 그리고 군대를 나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오래도록 작전을 수행하면 재정이 말라버린다. 장기전으로 병사들이 피로하고 사기를 잃고, 재정 손실이 크면 이웃나라가 그 어려운 틈을 타서 치고 들어온다.” 손자는 이어서 말한다. “전쟁을 잘 하는 리더는 두 번 거듭 징집하지 않고, 식량을 여러 번 밖으로 실어 나르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위기를 말하며 항상 겁을 준다고 해 보자. 결국 조직이 피로해진다. 위기가 닥쳤다고 부하들을 겁주는 건 적절할 때 딱 한 번으로 족하다.◆3편 '謀攻'손자는 말한다. “적국을 온전히 두고 굴복시키는 게 최선이고, 전쟁을 일으켜 적국을 깨부수고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이다. 적의 군사를 온전히 두고 항복시키는 것은 최상이고, 전투를 벌여 전체 군사를 깨부수는 건 차선이다.” 여기서 손자병법의 시사점은 갈등 상황에서 최적의 공격강도(the optimal level of destruction in a conflict situation)를 갖추라는 것이다. 협상장에선 최소한의 공격라인만 구축하고 끝내라는 것이다. 협상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무참하게 파괴하면 안 된다. 협상에서 이겼다고 “야, 이거 봤어? 넌 그 따위 밖에 못해?”라며 상대를 공격하는 말을 하면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힘들고 계속적으로 관계를 쌓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긴 후에는 우아하게 행동해라.그러면 손자가 최선의 공격법이라고 하는 '온전하게 적을 굴복시키는 법'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는 '위협'이다. 위협을 통해 우리는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전쟁을 잘 아는 장수는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킨다.” 물론 비즈니스 현장에서 위협이란 좀 다른 의미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우리 회사의 '힘'을 상대 기업에 보여줄 수 있다. '도'를 보여주는 것 말이다. 우리 조직은 철저하게 준비돼 있다는 것, 단합돼 있다는 것,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라. 그러면 상대는 협상장에 들어갈 필요 없이 저절로 굴복하게 돼 있다.손자는 이어서 차선의 공격법도 말하고 있다. 상대방의 동맹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의 동맹을 '고객'으로 이해한다. 경쟁 기업과 고객의 우호적 관계를 끊어버리라고 손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상대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손자가 차선책에 이어 말하는 보통 레벨의 공격법은 상대편 군대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협상장 안의 일이다. 손자의 세 번째 공격법은 협상장에서 나와 상대와 직접 만나면서 현안을 풀어가는 방법이다. 이 때 협상장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평가하는 말과 감정적인 말을 피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으로 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상대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서로 합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되 내가 제안하고픈 협상가격은 적당한 시점까지 숨겨야 한다. 만일 상대가 도발적으로 나오더라도 대꾸하지 말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주요 전략이다. 상대는 나 역시 흥분할 것으로 예상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냉정한 모습에 당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위협적인 언사는 내뱉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손자는 '성(城)'을 공격하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꼽는다. 나는 '성'을 협상상대의 신념과 성실성 등이라고 본다. 상대방이 뭔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신념이 이상하다거나, 성실하지 못하게 보여도 “넌 거짓말쟁이야”라고 격분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도 감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경우 협상은 파탄나기 십상이다. 차라리 협상장을 조용히 떠나는 게 낫다.손자는 그래서 이렇게 충고한다. “한 나라의 군주는 한때의 노여움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전군의 장수 역시 잠깐의 분노로 전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익에 맞으면 행동하고, 맞지 않으면 진행 중인 전쟁도 멈춰야 한다. 노여움은 시간이 흐르면 기쁨으로 바뀌고, 분노도 시간이 흐르면 즐거움으로 바뀐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 ◆스티븐 헤이포드 미국 인디애나대 켈리스쿨 교수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관심분야는 분쟁해결과 비즈니스 윤리다. 켈리스쿨과 복수학위 협정을 맺은 성균관대 GSB에서도 강의하고 있다.정리=박현준 기자 hjunpark@<ⓒ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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