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얻은 삶 남을 위해'..정진석 추기경 금경축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사제로서 수품 50주년인 금경축을 맞이하는 일은 드물다. 사제로서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볼 만큼 다 보았으니 금경축을 맞는 것은 그만큼 축복이라는 얘기다.
1986년 사제 수품 25주년인 은경축을 지낸 그가 18일로 금경축을 맞았다. 그는 한국 가톨릭계의 정신적인 아버지, 정진석 추기경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회초리가 무서워 아침ㆍ저녁 기도를 빼놓지 않았던 그는 조금 더 커선 복사로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드리면서 사제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 생각대로 움직이게 한 건 6.25였다. 정 추기경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택 수색을 하던 북한군에게 반동분자로 지목돼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었다. 한밤중에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군 장교 한 명과 마주 앉았다. 장교는 권총을 꺼내 정 추기경의 앞가슴을 겨눴다. '달카닥'하고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만에 정 추기경은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 추기경은 그 때부터 자신의 삶은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것이라 여겼다. 같은 해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더 넘기고 살아난 정 추기경은 여생을 남을 위해 살기로 했다. 그 길로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1961년 3월1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정 추기경은 1970년에 최연소 주교가 돼 청주교구 교구장에 올랐다. 1998년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06년 3월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정 추기경은 1969년 펴낸 자전적 수필집 '목동의 노래'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아버지'라 불렸을 때 느낀 전율을 못 잊는다고 했다. 우리말로는 '신부님'이지만 서양에선 보통 '아버지(father)'라 부르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이 무거웠다고 했다. 그 책임감도 잠시, 사람들로부터 시중과 존경을 받으며 지내다보니 처음 느꼈던 그 맘도 사라지더라 말하는 그는 '사제'를 빼놓는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사제가 돼 오히려 가난과 겸손에 정반대되는 대우를 받아온 게 걱정이라는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 교구장에 임명될 때 세운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대로 살려 애써왔다. 순간이나마 봉사를 하기보다 시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줄로 여겼던 자신 때문에, 사제의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한 자신 때문에 구원의 길을 놓쳤을지 모르는 영혼들에게 보속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하는 정 추기경이다. 정 추기경의 사제 생활 50년을 축하하는 미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열렸다. 축하미사에는 서울대교구 주교단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수도자와 신도들이 참석했으며, 미사 뒤 열린 축하식에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이명박 대통령, 신학교 동창인 광주대교구 최창무 대주교가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 추기경은 미사에서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주님이 과분한 은총을 주셨다"며 "50년 전 오늘 사제품을 받고 감격에 찼을 때의 각오를 명심하며 평생을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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