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며칠 전에 지하철을 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2

<드림하이>를 시작할 때 “삼동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나.김수현 : 적어도 삼동이가 갖고 있는 것들은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삼동이는 순박하고 순수하면서도 항상 전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혜미, 진국이와의 삼각관계 안에서 진국이가 늘 혜미에게 “이건 이렇게 해. 슬플 땐 울어. 그게 맞는 거야” 라면서 가르쳐주고 잡아주는 입장이었다면 삼동이는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라며 그냥 지켜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발 뒤에서 지켜볼 줄 아는 모습이 남자다워 보였고, 나도 그런 점들을 어느 정도는 배운 것 같다. <H3>“연기는 카타르시스, 쾌변 같은 느낌”</H3>
<정글피쉬>나 MBC <김치 치즈 스마일>에도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였던 것 같다. 연기력은 물론 존재감 자체가 굉장히 강렬해졌다는 걸 느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김수현 : 그 전까지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한 마디를 해도 연극조로, 틀에 짜인 것 같은 말투로 대사를 했다. 내가 모니터를 해 봐도 너무 가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부터는 그냥 어설픈 면을 보여주는 걸 무서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사람은 완벽한 쪽보다 어설픈 쪽, 이기는 쪽보다는 상처받는 쪽에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니까 어설픈 면을 보여줬을 때 좀 더 응원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진이에겐 어수룩하고 뭔가 모자란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움직인 것 같다. 예전보다 칭찬도 많이 받았고. 사람들의 응원이나 사랑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김수현: 내 페이스대로 길을 가고 있는데, 거기에 응원과 사랑이 좀 더 나를 밀어주는 느낌, 그 정도다. 결국 자신의 마인드컨트롤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오히려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편 같다. 기대치가 높은 편인가?김수현: 기대치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냥, 스스로에게 당근을 주는 것보다는 채찍질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아는 형님이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건 중요하지만 그게 자기합리화가 되면 안 된다. 그 만족이란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난 아직도 자기만족과 자기 합리화의 경계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예 칭찬을 빼버린다. 그렇다면 언제쯤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줄 수 있을까.김수현: 한 30년 뒤? (웃음) 나중에 머리 하얘졌을 때 (노인 목소리로) “허이구, 이젠 내가 좀 하는 것 같네. 어허, 좋네~” 이렇게. 하하. 그럼 노후에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하지만 연기를 계속 해 나가려면 어떤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자기만족이 아니어도 연기를 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뭔가.김수현: 그냥 연기할 때의 기분, 하고 나서의 기분이다. 정신적인 것보다 몸으로 느껴지는 건데, 쉽게 말하면 카타르시스고 다른 말로 하면... 아,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음... 쾌변? 하하하. 그런 느낌이다.<H3>“책임감이 커지니까 겁이 나기도 한다”</H3>
평소에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게 울고 웃는 감정 연기를 표현할 때는 좋지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한 번 중심을 잃으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지 않나.김수현: 그래서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한 건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좋다. ‘감정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억해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놓으면 나중에 연기할 때 꺼내 쓰기 쉽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진을 찍듯이 어떠한 상황을 기억해놓는다. 가끔 혼자 있다가 우울한 마음을 못 견디고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우는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동작으로 어딜 만지면서 울고 있구나, 이게 이런 그림이구나, 하고 기억을 해놓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연습도 많이 한다. 갑자기 서랍을 열고 10초 동안 본 다음에 닫고,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해내는 게임 같은 건데, 닫자마자 ‘앗, 까먹었다!’ 할 때도 있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해 보니까 더 재밌다. 그래서인지 군중 속에서 혼자 우는 연기에 몰입하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집중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나.김수현: 2009년 정도부터 눈빛을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사람을 사물 보듯이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 한 곳을 쏘는 게 아니라 약간 뒤로 넓게 보는 느낌이 나온다. 초점이 좀 퍼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연습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에 집중하려고 하면 외부와 내가 닫히는 것 같다... 아,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 때 진짜 힘들었다. 와하하하하. 사람들이 사진을 막 찰칵찰칵 찍어대고! 마음속에서 항상 두 자아가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웃음) 하지만 대중들에게 보이는 결과물은 항상 잘 이겨낸 모습이다.김수현: 다행이다. 언젠가는 붕괴된 걸 보여줄 수도 있겠다. (웃음) 어쨌든 지난 2년 사이 꾸준히 인지도가 상승했고 또래 연기자 가운데 가장 유망주로 손꼽히고 있다. 원했던 바기도 하겠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니 힘들어진 점도 있나.김수현: 사실 아직까지는 100% 실감을 못 하고 있다. 확실히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알아봐주시는 건 알겠고, 사무실에는 전화도 많이 오고. 하하. 아직까지 특별히 힘든 건 없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을 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이제 배경에 묻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그 땐 지하철 문이 되어 있었다. 하하하. 다만 내가 짊어지고 갈 책임감이 커지다보니까 신경이 쓰이거나 겁이 나는 부분은 있다. 가령 어떤 건가.김수현: 원래 담배를 피는데, 밖에서는 괜히 줄이게 된다던가? (웃음) <H3>“배우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야심이 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H3>
배우로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더 커졌을 텐데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면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 같나.김수현: 내가 원하는 걸 우선할 것 같다. 좀 이기적인가? 그런데 만약 대중들은 나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내가 원하는 건 사기꾼 같은 캐릭터라고 한다면 난 사기꾼을 멋있게 보여주겠다.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멋진 것만 하려고 하면 오히려 실망시킬 것 같다. 사기꾼 외에도 바람둥이, 도둑놈처럼 도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김수현: 그런 직업들은 굉장히 매력적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매력적이어야 사기를 치고 바람도 필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도 굉장한 매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모험 같기도 한데 그걸 성공적으로 표현했을 때 오는 쾌감이 있을 것 같다. 예전 인터뷰에서 “나는 좀, 야심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야심이란 게 뭔가?김수현: 아직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큰 것 같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도 일종의 야심이다. 무슨 배짱인지는 몰라도 매번 10년, 20년 지날 때마다 거기에 맞는 인생경험을 쌓아서 진실된 연기로 김수현이란 사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고 얘기하는데, 이것도 좀 야심 같다. 배우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야심이 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속물 취급받을까봐 두려워서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게 야심이다. 혹시 사람들이 이런 점을 싫어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나.김수현: 앗, 지금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지만 그래도 결국 작품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연기가 좋다. 사실 내가 무서워하는 부분은 연기가 아니라 인간 김수현이 직접 드러나는 거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 김수현이 아니고 송삼동인데 삼동이는 담배도 안 피니까. (웃음) 괜히 그 이미지를 깨뜨릴까 봐 예능 프로그램에도 못 나간다.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용기가 생기려나. 10년을 주기로 그에 맞는 인생경험을 쌓을 계획이라면 일단 앞으로 반 넘게 남은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김수현 : 아, 마스터플랜이 있다. 우선 20대에는 자기계발을 진짜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모두. 지금은 내가 좀... 왜소하기도 하고, 피부도 안 좋고 말 하는 것도 너무 애 같고. 하하. 계속 꿈에 젖어있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을 이제 지워가야지. 그렇다면 스스로 떠올리는 서른 살 김수현의 모습은 어떤가?김수현 :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게 무슨 냄새야?’ 할 정도로 남자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 하하. 그리고 굉장히 때 타 있을 것 같다. 캬아, 그럼 그 때부턴 본격적으로 뭔가 더 보여드리겠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인터뷰. 이가온 thirteen@10 아시아 인터뷰.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글,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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