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한 노교수가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땅 300.89㎡(100여평)를 우리나라 한 대학에 기부했다. 그 분은 일본 돗쿄(獨協)대학 시로타(城田俊) 명예교수다. 그는 한국의 기록문화발전 등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 기부한 땅은 그가 홋카이도 대학교수 재직 때 연구사택으로 쓰던 터라고 한다. 시로타 교수는 소유권 이전을 위한 절차와 비용도 손수 해결했다. 언어학자인 그는 2009년에도 러시아 관련서적 1200여권을 같은 대학에 기증한 바 있다. 그의 아름다운 기부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일본인 노교수의 기증에 가슴 한쪽이 먹먹하다. 한대 맞은 느낌이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찬란한 기록문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됐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단절된 기록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해 볼 때다. 남의 탓만 할 때는 지났다. 기록문화르네상스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제도적ㆍ행정적으로 지원하고, 학계는 선진기록학 정착에 노력하고, 민간은 기록문화에 애정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대한민국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책임자인 필자 역시 어깨가 무겁다. 일본인 노교수가 던진 화두가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엔 재산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기도 한다. '달란트(재능) 기부'란다. 미용사는 이웃들에게 머리를 다듬어주고 치과의사는 그늘진 이들에게 이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이다. 기부는 나눌수록 커진다고 한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을 밝혀도 첫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나눔의 미학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필자는 역사에 대한 기부를 제안해 본다. 흔히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영광과 상처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말을 걸어올 때 생생히 증언해 줄 것이다. 그땐 그랬노라고. 하지만 우리의 '가까운 옛날'을 이야기하기엔 기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게 비록 우리의 탓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내가 쓴 때 묻은 일기, 빛 바랜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을 기부하는 건 역사에 대한 기부다. 역사에 대한 기부는 간송 전형택 선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기부를 실천할 때 우리의 기록문화는 튼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기록문화의 꽃은 우리 모두의 기록이 거름이 됐을 때 역사의 꽃으로 활짝 피기 때문이다. 시로타 교수의 역사에 대한 기부가 대한민국 기록문화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기부는 광야를 걸어가다 길동무를 만난 느낌이다. 일본인 노학자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를 역사에 대한 기부로 답하는 것은 어떨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가기록원은 2014년까지 주요 역사기록물의 종합적 서비스를 위한 '주요 역사기록물의 편찬ㆍ콘텐츠 개발 4개년 계획'을 세웠다. 개별 추진돼 왔던 '일제문서 해제' '일제시기 건축도면 컬렉션' '독립운동 관련판결문 컬렉션' 등의 역사기록물 편찬ㆍ콘텐츠사업을 통일적으로 펼치고 정부수립 이전 주요 역사기록물의 서비스기반도 쌓기 위한 것이다. 역사기록물 편찬ㆍ콘텐츠개발사업이 끝나면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정책, 근대건축사, 독립운동 관련연구 자료로서 연구자와 국민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시로타 교수의 깊은 역사의식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며 이를 본보기 삼아 생활 속의 국가기록문화를 꽃피우는데 앞장설 생각이다.이경옥 국가기록원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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