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재가(在家)제자 소설가 정찬주씨의 숨겨놓은 이야기
정찬주씨가 2005년 여름 전남 순천 조계산 불일암에서 법정스님을 만나 법문을 듣고 있다. 사진=유동영 작가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박은희 기자] 아시아경제가 법정스님의 입적 1주기(28일)를 맞아 25년간 보필하며 법정스님의 책을 펴내 온 소설가 정찬주씨를 인터뷰했다. 법정스님으로부터 '무염'이란 법명을 받고 제자가 된 정씨는 "물질이나 권력, 명예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나를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다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꼬박 4시간이 걸려 도착한 전남 화순 이양역. 역에서 그의 집까지는 차를 타고 또 한참을 가야했다. 쌍봉사를 마주하고 자리한 그의 집은 그야말로 '산중(山中)'이었다. 10여년 전 화순으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는 그는 처음 이 곳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집 안으로 들어서는 문에 호미를 걸어두었다고 했다. 지켜보는 이 없지만 게으름을 멀리하고 철저하게 생활하기 위함이었다. 호미를 볼 때마다 '농부들은 땀 흘려 일하는 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게으름을 경계했다고 한다.
남도산중에서 수행의 삶을 사는 그는 지난해 3월 입적한 법정스님의 재가(在家)제자인 소설가 정찬주씨(58ㆍ사진)다. 23일 그의 집,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에서 그를 만났다. 1985년 고교 국어 교사를 그만 두고 샘터사에서 일을 시작한 게 그와 법정스님의 인연의 끈이 됐다. 당시 월간지 '샘터'에 칼럼을 연재하던 법정스님을 담당하게 된 그는 칼럼을 묶어 책을 내는 과정에서 법정스님을 알게 됐다. 송광사 불일암으로 교정지를 들고 가 허락을 받은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책을 내기를 십여차례. 그렇게 나온 책이 '산방한담' '말과 침묵'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등이다.그는 법정스님이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법정스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책으로 맺은 인연을 이어가던 어느날, 그는 법정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법명을 주십십오." 법정스님은 그의 말에 놀라는 기색 없이 불일암으로 내려오라 했다. 그렇게 불일암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법정스님은 그에게 두 개의 법명을 주셨다. 그 중 하나가 지금 그의 법명인 무염(無染)이다. 세상에 살되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또 다른 법명이 무엇인지 묻자 인연이 아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1991년 법정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그는 지금껏 법정스님의 가르침대로 살려 애쓰고 있다.법정스님을 곁에서 본 지 25년, 그간 깨친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묻자 그는 '무소유'를 말한다. 말과 행동이 한결같았다는 법정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만년필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법정스님이 신도로부터 만년필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미 만년필이 하나 있었던 법정스님은 같은 물건을 두 개 갖게 되자 아껴써야겠다는 살뜰한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을 깨달았다. 만년필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서야 살뜰함이 다시 살아났다는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안 갖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년필 뿐이 아니다. 겨울 내복을 선물받았을 때도 법정스님은 한 벌 이상이 되면 나머지를 다른 이에게 줘버리곤 했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무소유를 이처럼 행동하기 쉬운 실천덕목으로 가르쳐준 법정스님이지만 불심 깊은 신자들에게는 달리 가르쳤다고 한다.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존재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내가 나라고 고집하는 모습일 뿐, 실체가 아니다. 내가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어딨겠냐는 게 법정스님이 말하는 무소유의 철학이다. 그는 이를 공(空)사상, 무아(無我)사상이라 했다. 무소유의 철학이 있었기에 법정스님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건에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명예나 권력을 버린 산중의 삶을 법정스님은 자유의 삶이라고 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와 함께 강조한 건 '자기다움'이었다. 나와 남을 비교하지 말고, 남을 닮으려하지 말라. 남을 닮는 것은 자기자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매화는 매화여야지 꽃이 작다고 해서 장미처럼 커지길 바라는 건 불행이라는 게 법정스님의 말이다. 법정스님의 이 같은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그는 샘터사 부장, 이사직을 미련 없이 털고 이 곳, 전남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귀향을 결심한 데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자연을 벗 삼아 내면이 깊어지고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서울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살던 삶을 버리고 남도산중으로 내려온 뒤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기다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하는 그.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건 다 법정스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했다. 폐암으로 병원에 계실 적 낡은 수레같은 몸을 일으켜 매일 아침이면 침대에서 예불을 드렸다는 법정스님처럼 항상 자신의 흐트러짐을 경계하며 산중생활을 하는 그에게 '선생님은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좇아 살고 계신 것 같다'고 말하자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존경하는 사람에게 심취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극복하는 게 진정한 존경이며 집착을 하는 것은 자기를 잃는 일이라고도 했다.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물질이나 권력,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외에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법정스님이 입적 뒤 자신이 펴낸 책을 절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이야기하며 그는 여기에도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취해 맹목적으로 절을 드나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면 그 또한 말빚을 지는 것이라고 하셨다는 법정스님의 말을 전하며 그는 진정으로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좇으려 한다면 법정스님이나 법정스님의 말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집착을 버리고 자기다운 삶을 사는 게 법정스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법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법정스님 입적 즈음의 얘기를 물었다. 그는 법정스님이 병원에 계실 때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며 그 이유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님은 병원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셔야 됐을텐데 저까지 스님께 그런 괴로움을 끼치기가 싫었습니다. 또 스님은 맹목적으로 자신을 따르며 자주 찾아오는 사람보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떠올라 저는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정은 기자 jeun@박은희 기자 lomorea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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