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퇴진 거부, 이집트 격랑 속 미국 '헛다리'

[아시아경제 김민경 기자] 10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군부가 쿠데타 움직임을 보이자 이날 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는 대국민연설에 나서면서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17일째를 맞은 이집트가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10일 오전 최고위원회를 연 뒤 방송을 통해 "시민들의 요구가 수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무바라크와 오마르 슐레이만 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외신들은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방송을 접한 시민들은 '무바라크 퇴진하라'는 구호를 '무바라크 퇴진했다'로 바꿔쓰며 광장에 모여 환호했으나 군부 쿠데타를 거부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은 "우리는 군부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해주기를 바란다"며 "군부 통치가 아니라 민간 정부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밤에는 무바라크의 반격이 이어졌다. 무바라크는 긴급 대국민연설에서 "오는 9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집트가 안정을 되찾으면 긴급조치법을 해제할 것이며, 헌법 중 6개 조항의 개폐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설이 끝난 자정 무렵 시민들은 귀가하지 않고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최대 야권단체인 무슬림형제단 등은 무바라크가 퇴진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미르 라드완 신임 재무장관은 10일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에 대해 "이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렸다"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들을 무시해왔으며 이제는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군부 발표를 접하고 "우리는 역사의 전개를 목격하고 있다"며 "이집트 민중들이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변혁의 순간"이라고 연설했으나 불과 한시간 뒤 무바라크가 '버티기'를 선언하면서 헛다리를 짚은 셈이 됐다. 그는 "이집트 민중은 연령대와 직업을 막론한 엄청난 숫자였다"며 "미국은 이집트 민주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모든 이집트인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혀 로이터통신, 일간 가디언 등 외신들로부터 '뒤늦게 시위대에 동조하려는 시도였다'고 조롱당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이집트 사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유지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았다. 오바마는 시위 초 즉각적 정권이양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무바라크가 퇴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입장을 선회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은 '질서있는 개혁'을 강조하며 시위대와 거리를 뒀고, 슐레이만 부통령의 대화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을 경계하는 발언도 있었다. 김민경 기자 skywalk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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