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12일째 소강국면
[아시아경제 김민경 기자] 30년 간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 시작된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4일(이하 현지시간) ‘무바라크 퇴진의 날’ 시위를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들어선 가운데 이집트 차기 집권 후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십만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이 모여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외쳤던 4일 시위는 친정부 세력과의 별다른 무력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5일 카이로 시내는 시위가 소강상태인 가운데 오후3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진행됐던 통행금지가 오후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로 축소됐으며, 광장 길목을 지키던 군인들도 대부분 철수했고 검문소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편 무하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4일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번복하고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AL)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는 등 야권에서 차기 대선 후보들의 윤곽도 뚜렷해지고 있다.◇이집트의 ‘간디’ 엘바라데이= 무바라크 퇴진과 이집트 민주화를 외치며 지난달 27일 귀국해 가택연금 당한 엘바라데이(69)는 지난달 30일 야권 30여개 조직이 결성한 대정부협상위원회 대표로 추대되며 이번 반정부 시위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997년부터 2009년까지 IAEA 사무총장을 3회 역임했고, 2005년에는 핵확산 방지에 기여한 공으로 IAEA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머리카락이 없고 뿔테안경을 쓴 외모에 노벨평화상 수상 이력이 더해져 서방 언론들은 그를 인도의 비폭력 평화주의자 ‘간디’에 비유하기도 한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인지도가 매우 높으나 1980년 유엔 파견 이래 외국생활을 계속해 국내 정치적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지난 4일 이집트 최대 정파단체인 ‘무슬림형제당’ 웹사이트에 그를 거부하는 주장이 게재돼 온건파뿐 아니라 강경파까지 아우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또한 IAEA 사무총장 시절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어 미국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지 아직 미지수다.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약 15억 달러(약 1조6500억원) 가량의 원조를 받고 있어 미국의 지지 없이 정권을 끌어 나가기는 사실상 힘들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인터뷰에서 “이집트 차기 정권은 반미 정권이 아닐 것”이라며 미국 정부를 안심시키는 발언을 했다.◇국내 정치기반 다진 무사= 외교관 출신으로 1991년부터 10년간 외무장관을 지낸 무사(75) 사무총장은 국내 정치 기반이 탄탄하며 국민 지지도 크다. 지난 2001년부터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맡아 왔으며 임기가 두 달 남았다. 지난 2004년에는 그를 2005년 대선후보로 추대하자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수만명이 동참하기도 했으나 출마하지 않았다. 지난 4일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 그가 동참하자 시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는 구호도 등장해 인기를 증명했다.◇군부 인사들= 1952년 왕조가 무너진 이래 60년 간 이집트 정치의 큰 축을 담당해 온 군부 인사들의 차기 집권 가능성도 점쳐진다. 군부는 무바라크의 정권 세습 움직임에 반대해 왔다. 군부 인사 중 사미 에난(63) 육군 참모총장은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시위기간 중에도 미국과 연례 고위급 국방회담에 참석하는 등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점도 유리한 요소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그는 무슬림형제당의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 1일 무바라크가 30년 만에 첫 부통령으로 지명한 오마르 슐레이만(75)도 주목받는다. 무바라크 자신도 1975년 전임자인 안와르 사다트의 부통령으로 지명된 후 사다트가 암살당하자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집권을 시작했다. 군 장성 출신인 슐레이만은 1993년부터 정보기관인 이집트총정보원(EGIS) 수장을 지냈다. 지난 2009년에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중동의 가장 파워풀한 인물 5인’ 중에 꼽히기도 했다.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으나 국민들은 정보기관장으로서 고문 등을 일삼았던 그를 민주화와 배치되는 인물로 여기고 있다.무하마드 탄타위(75) 부총리 겸 국방장관도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1956년대부터 세 차례 중동전과 걸프전 등에 참전했고,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김민경 기자 skywalk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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