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기자
이천세 첨단범죄 제1부 부장검사
이튿날 검찰에 나온 김군은 반성하며 죄를 자백했다. 학비를 벌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김군은 그동안 8000만원 가량을 모았지만 쓰지 않고 고스란히 보관해둔 상태였다. 그는 "검찰이 제 죄를 적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하지만 김군의 명민한 머리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벌였던 어른들은 검찰에 소환되자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주모자인 증권사 직원 이모씨(27)는 "김군이 저지른 일"이라며 범행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김군은 인터넷 주식카페에서 처음 만난 이씨를 무척이나 따라 인터넷 필명도 "아기 모태범"이었다. 이씨의 인터넷 필명이 "막내 모태범"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나도 너처럼 집안이 어려웠다"면서 김군의 마음을 사고는 주가조작에 끌어들인데다, 이후에 범행을 그만 두려는 김군을 막아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죄를 모두 자기에게 떠넘긴다는 소식에 김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건을 맡은 노경화 검사는 "증권사 직원 이씨는 '나는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김군의 마음을 파고들어 범죄로 이끌었다"면서 "김군은 집만 가난하지 않았다면 범행의 유혹에 절대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에게 죄를 떠넘기려 했던 이씨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명석한 김군의 두뇌였다. 김군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범죄행위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수사진도 감탄할 정도였다. 처음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던 주가조작 종목은 하나에 불과했지만, 김군이 마음을 열고 진술을 거듭함에 따라 하나가 다섯개로, 다섯개는 스무개로 불어났다. 최종적으로 검찰이 밝혀낸 주가 조작 종목은 90여개 기업이었다. 김군의 진술 덕에 검찰은 5명을 구속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기소, 1명을 지명수배할 수 있었다.수사를 지휘한 이천세 첨단범죄수사 제1부장검사는 이후 김군의 처리를 두고 고민했다. "재판에 넘겨 혼을 내주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현역 고교생 신분임을 감안해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수사에 들어가고, 학교에도 전혀 알리지 않는 등 검찰도 김군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한 상황이었다.그러나 이 부장검사는 김 군을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결단했다(기소유예). 가난한 형편과 어른들의 유혹, 학비마련이란 동기를 감안해서다. 머리가 좋은 김군의 장래도 생각했다. 대신 이 부장검사는 김군에게 "땀 흘려 노동해서 돈을 벌라"고 타일렀다. 반성문과 함께 앞으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노 검사 역시 "넌 이미 증권계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또 주식에 뛰어들면 다시 유혹의 손길이 뻗칠 수 있다"고 훈계했다.김 군도 "대학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군은 올해 모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주가조작으로 벌어들인 돈도 몽땅 장학재단과 사랑의 집짓기에 기부했다. 자기처럼 "가난해서 공부 못하고,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한다.박현준 기자 hjunpark@<ⓒ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박현준 기자 hjunpark@<ⓒ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