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부동산 거품은 없다'

루이안그룹의 뤄캉루이 회장(사진=블룸버그뉴스)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항공·철로·간선도로·도시전철을 한 데로 통합할 경우 하루 110만의 유동인구를 새로운 상하이(上海) 중심가로 끌어 모을 수 있다."화려한 신톈디(新天地) 쇼핑지구를 성공적으로 건설해 현대 상하이의 아이콘이 된 홍콩 소재 루이안그룹(瑞安集團)의 뤄캉루이(羅康瑞ㆍ영어명 빈센트 로) 회장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상하이외신기자클럽에서 한 말이다.뤄 회장의 이날 발언은 이른바 '훙차오종합교통허브'(虹橋綜合交通樞紐)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날 “중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란 없다”며 “훙차오허브로 상하이 재계 지도가 바뀌면서 외국 기업들이 더 유입될 것”이라고 장담했다.루이안그룹은 지난해 9월 훙차오허브 부지 일부를 4억8000만 달러(약 5400억 원)에 매입했다.1990년대 뤄 회장이 신톈디 부지를 매입했을 때 성공을 확신한 이는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톈디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2002년 평방m당 1만8000위안(약 300만 원)이었던 현지 땅값은 현재 10만 위안으로 껑충 뛰었다.1948년생인 뤄 회장은 “아버지(홍콩 부동산 재벌인 뤄잉스)가 밥상머리에서부터 엄하게 교육시켜 부유한 티조차 내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그는 15세에 호주로 유학 가면서 보름이나 걸리는 배를 타고 갔다. 방학에는 햄버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할 정도로 아버지는 그를 강하게 키웠다.1969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홍콩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 뤄잉스(羅鷹石)가 이끄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10만 홍콩달러(약 1400만 원)를 빌려 독자적으로 사업에 나섰다.아버지가 너무 호되게 일을 시키는 바람에 그만뒀다는 뒷이야기도 있다.뤄캉루이는 1984년 상하이공청단(上海共靑團)과 손잡고 호텔을 짓는 등 상하이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호텔 투숙객이 뚝 끊기자 공청단은 빌린 호텔 건축비를 상환할 수 없었다.이에 뤄는 공청단을 도와 부채 상환에 나섰다. 당시 공청단 서기가 한정(韓正)으로 현재 상하이 시장이다.상하이에는 1921년 중국공산당이 제1차 전국대표자대회를 열었던 자리가 있다. 한 서기는 당시 상하이 시장이었던 쉬광디(徐匡迪)와 함께 뤄가 그곳 주변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이렇게 해서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신톈디 지구가 탄생한 것이다.1995년 뤄는 충칭(重慶)에 첫 시멘트 공장을 세웠다. 이를 발판으로 루이안그룹은 중국 3대 시멘트 생산업체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게 됐다.루이안그룹은 뤄의 지휘 아래 충칭은 물론 우한(武漢)·다롄(大連)·푸산(佛山)·항저우(杭州) 등 다른 도시들에서도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뤄 회장은 지난해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536위를, 이달 발표된 '홍콩 40대 부자' 리스트에서 순재산 21억5000만 달러로 19위를 차지했다.이진수 기자 comm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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