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바이벌’에 골목상권 ‘휘청’

마트 못지않은 할인공세·슈퍼형 점포 확대… 영세 동네상인 생존권 위협

2010년 유통업계의 최대 핫 이슈는 ‘SSM(기업형 슈퍼마켓) 갈등’ 이었다. 지난 11월 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 등 SSM 규제 쌍둥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대형 유통업체의 동네 상권 위협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 치킨 등의 이슈가 연거푸 불거졌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복병’이 급부상 하고 있다. 바로 편의점들의 공격적인 출점 경쟁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편의점 점포 수는 전년보다 20% 증가한 1만7000개, 매출액은 6조 9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편의점은 특이한 상권 없이도 입점이 가능해 진입 장벽이 낮은 데다,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경우 본부의 매출액 대부분을 가맹점으로부터의 로열티에 의존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점포 수 확대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대기업 계열 편의점 업체들의 지나친 출점 경쟁과 가격인하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영세 중소상인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br />

실제 주상 복합 빌라 촌인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의 경우 무려 14곳의 편의점이 입점해 있다. 이들 편의점 간 평균 거리는 길어야 200m. 서울 충무로 구 명보극장 사거리 근처도 좁은 도로와 골목 사이 50m~100m 이내에 4개의 편의점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행 법규나 관련 제도상 편의점 점포 간 거리 제한도 없다. 무분별한 신규 출점으로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이 계속되는 이유다. 10여 년 전 업계에선 자율적으로 거리 제한을 두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담합의 소지가 있어 무산됐다. 이에 대해 한 편의점 관계자는 “근거리에 기존 점포가 있는 경우 소비자의 동선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무분별 출점… 점포 간 거리 규제 無 지난해 1월 롯데그룹 계열사인 세븐일레븐의 바이더웨이 인수로 편의점 삼국 시대가 열림에 따라 점포 수 확대 경쟁은 가열될 조짐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보광훼미리마트가 34.1%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어 GS리테일의 GS25 29.1%, 세븐일레븐 27.9%, 미니스톱 8.9% 순이다. 2, 3위간 시장점유율 차이는 불과 1.3%로 향후 점유율 확보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대형마트와 SSM에 이어 편의점까지 상권을 확장해 나가면서 영세 중소상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소량 상품에 대한 니즈가 큰 싱글가구, 노인가구의 증가와 맞벌이 등으로 근거리에서 빠르고 간단하게 쇼핑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편의점 업계는 주택가 공략을 가속화 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골목 상권 내 편의점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화형 편의점의 출현도 중소 상인들의 설 자리를 더욱 잃게 하고 있다. 동네 상권에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슈퍼형 편의점’으로, 학원가와 오피스가에서는 직접 빵을 굽는 ‘베이커리형 편의점’과 ‘문구형 편의점’이 들어서고 있는 것. 최근엔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호떡·군고구마까지 편의점 상품으로 등장했다.GS25는 올해 슈퍼형 편의점 ‘GS25 Fresh’ 의 점포 수를 200여개 더 늘릴 계획이다. 고령화,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주택가 생활편의형 매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GS리테일은 지난 2006년 찬거리 등 신선식품 수요가 높은 주부들을 잡기 위해 업계 최초로 슈퍼형 편의점을 선보였다. 현재 600여 점포를 운영 중이다. 일반상품은 물론 깐 양파, 마늘, 절단대파, 세척사과 등 40여 종류의 소포장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재래시장이나 동네 식료품 가게 등에서 판매하는 신선식품 품목은 대부분 취급하는 셈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신규로 오픈하는 생활편의형 매장은 ‘GS25 Fresh’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며, 기존 점포를 주택가 생활편의형 매장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경영주의 선택에 따라 간판을 바꾸기도 하고 그대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할인품목 확대 동네 슈퍼도 속수무책
최근 단행된 편의점 제품의 가격 인하도 영세 상인들의 생계 위협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다.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는 지난 12월1일부터 전국 4400여 점포에서 총 9개 품목을 7~24%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가격을 자체적으로 인하하는 것은 처음. 대상 품목은 소주, 라면, 우유, 커피믹스 등 판매 상위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상엽 세븐일레븐 상품운영팀장은 “가까운 편의점에서 소비자가 가장 많이 필요한 상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이번 가격인하의 궁극적인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주변 슈퍼마켓 상권에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가격 인하 품목인 우유, 소주, 라면 등은 슈퍼마켓에서 많이 팔리는 것들이다. 실제 이번 가격 인하 마케팅 전략은 매출 상승으로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 12월27일 기준 해당 9개 품목의 점포 당 판매 수량은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연관 상품 안주(소주), 종이컵(커피믹스), 식빵(우유)의 판매율도 각각 32.4%, 26.8%, 23.5% 늘었다.특히 주택가는 타 상권에 비해 효과가 컸다. 전 점 평균 구매 고객 수 신장률은 전년 대비 23.1%인 반면, 주택가의 경우 34.7%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화봉 소상공인진흥원 연구위원은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 상권 진출엔 단순히 시장 논리가 아닌 대부분의 소상공인이 생계형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소상공인진흥원의 소상공연 경영 현황 실태 조사 결과 중소 상인의 80%가 생계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 연구위원은 또 “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 등 SSM 규제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대형 유통업체는 슈퍼형·베이커리형 편의점 등 신종 점포를 출점하면서 편법적으로 동네상권에 진입하고 있다”며 “대형 편의점 업체들은 대중소 상생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염두하여 더 이상의 무분별한 출점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순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홍보실장도 “동네 슈퍼는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비해 서비스나 시설의 측면에서 경쟁에 뒤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다른 대안이 없는 영세 상인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해 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일각에서는 출점 경쟁을 통한 외형 확대 보다는 내실 성장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상품과 마케팅전략 개발 등을 통해 편의점 성숙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이코노믹리뷰 전민정 기자 puri2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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