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거치기간 연장 제한..실효성은

금감원 행정지도 추진…부동산시장 위축 우려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앞으로 가계대출에 대해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을 연장하는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금융감독원은 무분별한 거치기간 연장이 가계대출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시중은행들에게 이 같은 행정지도를 추진할 방침이다.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경기 침체 가속화 등 부작용을 불러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은행들은 통상 3~5년의 거치기간을 두고 20~30년 동안 분할상환하는 방식으로 주택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문제는 거치기간을 계속 연장할 경우 상환 능력을 넘어서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3~5년 안팎으로 설정되는 거치기간도 은행들이 스스로 단축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지난달 말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금융연구원 등이 참여해 열린 금융정책 릴레이 토론회에서 장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주택대출의 만기 일시상환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거치기간 연장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4일 대통령에게 내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원금 분할상환 대출의 과도한 거치기간 연장 관행을 개선토록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선 은행이 자체적으로 총 거치기간 한도를 정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은행과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범규준을 마련토록 할 방침이다.아울러 금감원은 은행들이 새로 대출상품을 판매할 때에도 고객들에게 가급적 거치기간이 없는 비거치식을 추천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 모두에 거치기간 제한이 적용되는 셈이다.금감원은 늦어도 내년 1분기 안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지도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말 현재 가계의 주택대출 잔액 273조1688억원 중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고 있는 비중은 229조4800억원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한다.대출 방식으로 구분하면 만기 일시상환이 38.9%고 원금 분할상환은 61.1%로 분할상환이 더 많다. 그러나 분할상환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3~5년 단위로 거치기간만 계속 연장해 이자만 내는 사실상의 일시상환인 실정이다.일시상환 비중이 높을수록 연체 및 대출 부실화 위험이 커진다. 만기 때 한꺼번에 목돈을 납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 당시 미국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이처럼 대부분 주택대출이 거치기간을 연장하는 일시상환 형태로 운용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거치기간 제한이 가져올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거치기간 연장 중단이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아직 살아나지 못한 상태에서 거치기간 연장이 안 되면 대출자 입장에선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부동산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주택대출이 줄어들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최악의 경우 상환 부담을 느낀 대출자들이 담보대출을 받은 주택을 다시 시장에 내놓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가뜩이나 수요가 많지 않아 게걸음을 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일각에서는 거치기간 제한 조치의 실효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은행에 행정지도를 가하면 다른 금융기관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도 시중은행들은 거치기간 연장을 원하는 대출자들을 위해 다른 금융회사로 갈아타도록 주선해주고 있다.새로 대출을 받을 때도 비거치식으로 유도하는 은행 대신 제2금융권에서 거치식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금융당국도 이 같은 우려를 감안해 거치기간 제한 조치의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신규 대출 시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을 유도하는 대신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등의 '당근책'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소득 중상위층이라고 해도 대출 원금의 5~10% 정도를 한번에 상환할 여력이 되는 대출자는 드물기 때문에 충분한 시일을 두고 단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리금 분할대출을 선택할 경우 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지난달 가계대출 연체율은 소폭 하락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11월말 현재 가계대출 연체율은 0.71%로 0.02%포인트 떨어졌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59%로 0.02%포인트 줄어든 영향이다. 박민규 기자 yushi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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