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평도 주민들은 왜 떠났는가

"이 나이에 얼마나 더 산다고 뭍으로 나가겠느냐. 죽어도 여기서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안 나가려고 했는데…." 6ㆍ25전쟁 때 연평도로 피난 온 게 꽃다운 20대. 두 딸과 세 아들을 낳아 기르며 섬과 함께 한 세월이 60여년. 호호백발의 여든 다섯 박선비 할머니는 차마 떨칠 수 없는 그 긴 세월을 섬에 놓아두고 어제 큰 아들의 손에 이끌려 뭍으로 갔다. 연평도 주민들이 연평도를 떠났다. 북한의 포격에도 남아 있던 200여명 주민들마저 어제 오후 인천행 배에 올랐다. 면사무소 직원과 경찰을 빼고 섬에 남은 주민은 40여명뿐이라고 한다. 뭍으로 나가도 살기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더 이상 섬에 있기가 무서워진 때문이다. 주민들 70~80%는 아예 이주를 원한다고 한다. 누가 이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는가. 북한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대량 인명살상무기인 122㎜ 방사포(다연장로켓) 200여발을 연평도 주민들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쏘아댔다. 전시에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금지하고 있는데 하물며 평시에 민간인을 향해 폭격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그러나 북한은 적반하장, 오히려 큰소리 치고 있다. 언제 또다시 포탄을 쏘아댈지 모른다. 주민들이 연평도를 떠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안에서 불안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불안의 근저에는 국가 안보에 대한 불신이 배어 있다.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분노와 배신감, 허탈함도 있다. 해안포 공격을 제압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실토까지 나왔다. 천안함 폭침 때 북한의 무력도발을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소리친 정부의 장담은 빈말로 드러난 것이다. 나라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한 심각한 상황이 연평도를 유령의 섬으로 만들었다.  정부는 교전수칙을 고치고 서해 5도에 지대지 미사일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 장비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북한의 무력도발 때마다 귀아프게 들었던 '응징'의 다짐과 무엇이 다른가. 정부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럴 때 박선비 할머니는 다시 아들 손을 잡고 웃으며 연평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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