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들뜬 기분이 지배하는 월드컵 시즌. 그중에는 다소 불편한 심기를 달래며 관전할 사람도 있다. 하필 월드컵이 열린 해에 상기하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을 가진 두 사람. 선거패배로 막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회창과 정몽준의 처지가 그렇다. 2002년 여름의 4강 열풍이 축구협회장 정몽준의 존재감을 알렸고 '노풍'의 가세로 재도전에 나섰던 이회창의 대권 꿈까지 날려버렸다. 그리고 올해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6월 선거에서, 재 점화된 노풍의 파편을 맞고 두 사람은 당 대표를 내놓아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8년의 시차를 두고 운명처럼 동병상련에 처한 두 사람. 이들의 앞길에 과연 활로가 없을까? 상처부위는 다르지만 한나라당이나 자유선진당이 같은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다. 그런데 치명상을 입은 후 대표가 물러나고 보니 양당의 운신에 걸림돌이 없어진 셈이 됐다. 일견 힘들 것 같아 보이지만 졸지에 그들과 비슷한 충격을 받은 MB와 한나라당 정치지형을 떠올리면 권토중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이회창에게 조금 유리하게 전개되는 편이다. 지지율만 높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정당화 되는 게 정당의 생리 아닌가. 이합집산의 명분은 만들면 되는 일. 두 집 살림을 하며 서로 포용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여당내의 길항관계가 박희태와 정몽준으로 이어졌던 관리형 대표체제였다. 당연히 당헌당규대로 치러야 되는 전당대회를 제 시기에 치르는 것조차 두려운 거대여당의 아이러니. 주적은, 오랜 잠수 끝에 돌연 거대한 몸체로 급부상한 민주당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점은 그들을 부상시킨 젊은 표심이 미래형이란 사실이다. 뿌리가 같은 보수는 손잡고 격려하며 투병해야 회복이 빠르다는 공감대를 선거 후유증으로 실려 간 응급실에서 깨달았던 것이다. 7월 보궐선거를 생각하면 한가하게 링거를 맞고 있을 겨를도 없다. 하물며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같이 퇴원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 놓는 게 피차가 좋다.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간에 능력보다 효용가치에서 쓰임을 받을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집권후반기로 가며 입지가 좁아진 여당이 파격적인 대안으로 돌파구를 찾은 사례를 보자. 바로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총리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나 있던 변호사 이회창에게 내민 여당대표란 카드가 그 경우다. 2년째 요지부동하는 박근혜란 위상으로 인해 정부여당의 입장이 곤궁한 것도 유사하다. 전격 사퇴한 이회창 대표 입장에선 1998년 초에 DJP연합정권 주주로서 두 번째 총리에 취임했던 JP의 변신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1997년 3전4기로 재기했던 DJ를 회고하며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길이 생긴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선거패배로 모멸과 충격을 받고 사라지는 사람들과 참패를 발판으로 다음을 기약했던 사람의 차이는 결국 인내였으니. 자유선진당이 틈날 때마다 여당을 공격했던 성명들도 내심을 알고 보면 이회창의 MB에 대한 다양한 구애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승자의 여유에서 흘려들었던 그 충고들이 마침내 MB의 귀에 솔깃해지는 타이밍이 왔다.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가 충청권의 맹주가 되어 보이겠다는 당당한 당선소감을 말할 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또한 민주당 지도부의 기고만장한 미소들을 보며 자유선진당의 초라한 현실을 대비시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정치라는 옷이 어울리지 않는 성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듯 하다. 김대우 시사평론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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