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죽음전까지 감시당했다'

국가보훈처, 일본문서 발견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일제가 감옥과 그 일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던 내용을 담은 일본 문서가 발견됐다.안중근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관할했던 일제 행정기관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가 공개됐다. 국가보훈처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견된 자료로 1906년부터 1922년까지 안중근의사에 대한 상황이 기록됐다고 22일 밝혔다. 이 자료에는 그동안 일본이 1급문서로 보관했던 자료로 당시 안 의사의 사형집행명령기록과 사형집행전 안 의사를 경계했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보훈처는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찾아내 국내로 복사본을 가지고 왔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10~12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4권'은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어 모두 독거 구금했다"며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또 "이들의 일거일동에 주의해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그 행동을 비밀 정탐케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증가하여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 데 힘썼다"고 했다.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도 공개됐다. 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쓰고 있으며,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안중근), 나이(33세),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특히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자료를 통해 89명의 최초 확인된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 보훈처는 "자료에 언급된 228명의 독립운동가중 89명은 최초로 확인된 사람"이라며 "자료를 토대로 독립유공자 포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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