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기자
1983년 10월 14일 작업용 타워에 올라온 정주영 현대중공업 회장이 선박 프로펠러를 검사하고 있는 김명웅 직원(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br />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사진을 보다보면 그 자리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현대중공업은 TV 및 인쇄광고를 통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선박 프로펠러 위에서 직원을 만난 장면과 조선소 잔디밭에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올해 정 명예회장 추모 9주기를 맞아 현대중공업은 최근 발간한 사보를 통해 두 사진 속에 정 명예회장과 함께 자리를 했던 직원들이 당시를 추억하는 글을 실어 눈길을 끈다.김명웅 현대중공업 부장
◆5m 타워에서의 ‘독대’= 김명웅 조선 자재지원부 부장은 27년 전인 지난 1983년에는 20대 중반의 활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당시 기장부 소속이었던 김 부장은 선박 프로펠러를 검사하고 있었는데, 그해 10월 14일 예고도 없이 5m 높이의 작업용 타워에 사다리를 직접 타고 올라온 정 명예회장과 일대일로 마주한 김 부장은 “이 높은 곳에서 창업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회상했다.현장 근무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를 물어본 정 명예회장은 김 부장이 담당하던 업무에 대해 굉장히 세세한 관심을 보이고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는 것이 나의 오랜 소망이었다”는 개인적인 꿈도 말해줬다고 한다.김 부장은 “그날 제가 본 창업자님은 현장을 시찰하는 회장님이라기보다는 작업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면서 “대화 끝에는 중량물을 다룰 때 항상 안전사고에 유의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업무에 임해 달라는 조언을 덧붙이셨다”고 전했다.김 부장은 이후 다수의 특허도 출원하고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특허청장상, 국무총리상까지 받는 영광을 안으며 현재도 선후배들과 함께 울산 조선소를 이끌어 가고 있다.정주영 현대중공업 회장(뒷줄 서있는 사람에서 왼쪽으로 두번째)이 지난 1988년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영빈관 앞 잔디밭에서 현장 관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 회장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남정렬 보람 사장.<br /> <br />
◆갈라진 구두 신은 회장님= 현대중공업 조선부문 협력업체 보람 남정렬 사장은 지난 1973년 사내훈련원 1기로 입사한 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지난 1983년경 영빈관 앞 잔디밭에서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정 명예회장이 현장 관리자들과 단합대회차 마련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사진속 정 명예회장 오른쪽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남 사장이다. 정 명예회장이 유머감각이 뛰어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박장 대소를 했었다고.그런데 남 사장은 같이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한 정 명예회장의 구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무지하게 큰 발에, 구두가 광택은 나는데 금이 쩍쩍 가 있었던 겁니다. 자세히 보니 오래된 구두에 구두약을 계속 발라, 두껍게 쌓인 구두약이 갈라졌다”라면서 “그 순간 새것만 좋아하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새삼 창업자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생겼으며, 그날 이후 지금도 구두를 한번 사면 10년 이상 신는 버릇이 생겼다”고 설명했다.남정렬 보람 사장
남 사장은 첫 입사 당시의 기억도 떠올렸는데, 당시 교육을 마친 동료들과 훈련원 담장 너머 막걸리 집을 들러 고향 이야기, 교육받는 이야기 등 담소를 나누곤 했다고 한다.그 때 옆 자리에 앉아있던 검은 털 모자에 허름한 바지를 입은 어르신이 막걸리를 드시다가 갑자기 교육생들 자리로 오더니 본인도 이곳에 일하러 왔다며 훈련원 생활은 어떤지, 이것저것 물어 보더라는 것.남 사장은 “그분은 ‘여러분이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지금 만드는 선박(7301호선)만 성공적으로 바다에 띄우면 여러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될 수 있을 거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중 누구도 그 분이 창업자님인줄 몰랐다”면서 “그 분의 말씀대로 훈련원 동기 중 40여명 정도가 지금 각 현장 및 설계부서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전했다.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