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준비된 ‘꽃 노털’

택시를 타면 세상이 보입니다. 얼마 전 30대 중반의 남자분이 운전하는 택시를 탔습니다. 그날 기사분과 참 인상적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의 월급이 자신보다 조금 더 많다고 합니다. 아내보다 자신이 일찍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손수 식사준비를 한다는군요. 밥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면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그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자신이 아이들 공부도 봐준다는 것입니다. 한때 술을 많이 먹었는데 술을 마시면 실수도 하고 다음날 생활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끊었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삶이 여유로워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가정도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어떻게 끊게 됐느냐고 묻자 운전을 하다보니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게 되는데 라디오에서 좋은 얘기를 많이 접하다보니 생각의 변화가 왔고 그래서 술을 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모범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하자 이 시대의 많은 젊은 가장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좋은 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좋은 얘기가 흔하다보니 무감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반복해서 듣는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생각 수준을 은연중에 끌어올리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노숙자들에게,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기술교육은 물론이고 인문학이나 철학을 교육시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교육의 결과 또한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니어 라이프 강의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야말로 기성세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꼭 필요한 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가치관을 다음 시대까지 고집하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이 노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변화가 싫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세상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불평이 많은가 봅니다. 지혜는 노년에게서 나온다는 것도 다 옛말입니다. 현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들이 하는 말은 시대착오적이기 십상입니다. 노인들이 세상 변화를 제대로 읽을 때 그들의 소중한 경험과 연륜도 쓰임새를 찾게 될 것입니다. 지금 교육이 가장 취약한 계층은 남성 시니어들입니다. 여성들은 TV 아침프로나 문화센터 등을 통해서 꾸준히 재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시대변화에 잘 적응하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남성들은 다릅니다. 정년퇴직 후 사회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나면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급격히 고립됩니다. 소통의 방법을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기에 그들은 심술궂은 이방인, 시대에 뒤처진 노친네들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만 탓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겐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시간적 여유도, 교육의 기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성공, 발전,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최근 60대 중반의 은퇴한 남성이 쓴 책을 읽었습니다. 대한민국 노인의 현주소, 의식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들이 지금 이 사회를 얼마나 낯설어 하는지, 세태의 변화가 얼마나 마뜩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삶이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 60대 중반의 저자는 남성의 평균수명이 72세니 자신은 이제 시한부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평균수명은 어렸을 때 사망한 사람까지를 포함해 만들어진 수치입니다. 수명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연로한 80, 90대의 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도 60이 넘으면 스스로 다산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런 것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겐 해당사항이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노인들은 삶의 주체가 아닌 부양받는 존재, 의존적인 존재로 자신을 규정짓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는 자식에게 최대한 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건강에 연연하는 이유도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입니다.지금 우리나라는 50세 이상이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노털’이 꽃과 만나면 ‘꽃 노털’이 됩니다. 꽃 노털은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준비된 자의 몫이겠지요?리봄 디자이너 조연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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