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작게는 가정이란 조직부터 기업, 사회, 국가를 꾸려 가는데 서로 엇박자가 난다면 효율은 오르지 않고 서로간의 반목과 불신으로 조직은 와해될 지경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인식의 불일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이혼 가정이 늘어나는 것도 부부간의 의사소통 부재에 의한 결과며 우리 사회가 요즈음처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집단간의, 혹은 정부와 국민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이는 인간이 가진 ‘한정된 합리성’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조직 내에서 아무리 의사소통을 잘하려 해도 소통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조직을 들여다보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소통 수단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부정확한 수단으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또 개인 이해의 차이도 불통을 부릅니다. 개인의 성장 배경, 교육 정도, 계급, 소속집단에 따라 의사소통의 용어와 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 소통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 정도에 따라서도 의사소통에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특히 회사에 있어 부서간의 장벽이 높을 경우 정보 교류나 업무 협조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소통 방향 즉 일방적이냐 쌍방적이냐에 따라서도 공감이 큰 차이가 납니다. 일방적 소통은 공유의 폭이 적어 공감을 일으키기 어렵고 쌍방적 소통은 비교적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고 공유할 수 있지만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렇듯 어렵고 서로간의 또는 조직 간의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나누다, 참여하게 하다, 공유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전적 의미로는 ‘계체간 공동의 상징체계를 통해 의미를 주고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존과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외부적으로 나타내는 의사표시로 최소한 전달자와 수용자 2개의 주체와 이들의 교류작용을 연결하는 매개물이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존 피스크는 커뮤니케이션을 ‘메시지의 전달’과 ‘의미의 생산과 교환’으로 학자들마다 상이하게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메시지의 전달’이란 송신자와 수신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부호화하고 해독했는지, 또 전달자는 커뮤니케이션의 채널 및 미디어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하는지에 관심을 둬 효용성과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의미의 생산과 교환’은 메시지나 텍스트가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어떻게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지에 주목합니다. 우리 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텍스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일본의 저술가 오너 가즈유키는 저서 ‘부드럽게 설명하고 강력하게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대화하는 것이나 문서를 만들어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제자 가섭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며 "바로 ‘이심전심’, 다시 강조하면 상대방과 통하고 공감해서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넘어 서로가 인식을 함께하고 공유하며 공감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지식포털에서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좋은 리더의 조건’에 대한 조사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필수 덕목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았습니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리더라 해도 상대방과의 소통이 원활치 못하다면 바람직한 CEO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직장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보면 전략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경영정보, 목표 등을 정확히 설명하고 직원들과 공유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리더는 나를 열고 상대방을 대함으로써 직원들의 믿음을 얻고 회사 방침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줄탁동시’란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알이 저절로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먼저 껍데기를 톡톡 쪼고 이를 알아차린 어미가 바깥에서 동시에 알을 쪼아야 병아리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올 수 있듯이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늘도 국회에서, 평택에서 또 어느 조직에서 인지불통의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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