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사무실 차려 눈속임…텔레마케터, 부장, 실장, 상무, 전무, 사장 나눠먹기
30일 충북지방경찰청에 걸려든 ‘270억 원대 사기 기획부동산업체 8곳’의 검은돈 챙기기 수법이 드러나 일반인들의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부천, 천안, 광주지역에 회사를 세우고 사무실 안에 안내데스크, 사장실, 상무실, 이사실, 총무부, 영업부 등 각 사무실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놓고 손님 끌어들이기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영업부서엔 개발부, 기획부, 사업부 등의 텔레마케터 팀을 두고, 각 부서엔 부장 1명과 텔레마케터 10명쯤을 채용했다.
텔레마케터들은 영업에 필요한 책상, 의자, 칸막이, 전화기 등 시설들을 갖춰놓고 ‘손님 사냥’에 본격 나섰다. 일종의 ‘포수’라 보면 된다.
이들은 기획부동산업체를 사실상 운영하는 사람들로 대표(업무총괄), 총무이사(자금관리), 전무·상무·실장(브리핑), 과장(현장답사) 등으로 역할이 나뉜다.
경찰이 검거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획부동산업체에선 2006년 4월28일부터 지난해 10월8일까지 충주시 직동, 호암동, 수안보 일대 임야 54필지 65만542㎡(약 19만7134평)을 ㎡당 평균 6800원(평당 2만2400원) 가량 총 44억3000여만 원에 사들였다.
이어 330~3300㎡(100~1000평) 단위로 임야를 쪼갠다. 그 때부터 구체적인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사업, 충주기업도시, 호암택지개발 지구, 수도권전철 등의 개발 사업을 빙자해 ‘미리 사두면 2~3년 뒤 수배의 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사람들을 현혹했다.
이들은 나눈 땅을 ㎡당 평균 4만1500(평당 13만7000원)에 팔아 735명으로부터 270억 원 가량을 받아 챙겼다는 게 경찰 수사 전모다.
▣ 유형과 특징
기획부동산업체들은 대체로 호화사무실을 차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손님들의 눈속임을 위해서다.
그리고는 수 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의 텔레마케터를 뽑어 손님들의 응답별 유인기법 등이 적힌 ‘부동산 상담 요령’(텔레마케터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시켰다.
전화 등으로 손님들에게 허위정보를 주면서 투자를 권해 사무실로 끌어들이거나 자신들의 친·인척, 아는 사람들 대상의 허위·과장광고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손님이 사무실을 찾아오면 임원(전무, 실장, 상무 등)들은 상담실로 안내했다.
개발계획 기사나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을 뽑아 보여주는 등 각종 감언이설로 속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쓸모없는 땅을 산 가격의 수배에서 10여배까지 비싸게 팔아 엄청난 차익을 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부동산업체가 파는 땅 대부분은 도로와 붙어 있지 않은 ‘맹지’가 많았다. 상당기간 이익은커녕 원금회수조차 어려움에도 많은 피해자들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내용을 잘 말하지 않아 경찰이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의 조사·단속으로 사둔 땅값의 폭락 등 불이익을 염려하거나 기획부동산에 일하는 텔레마케터들과의 관계(친인척 또는 지인)를 생각해서다. 심지어는 기획부동산을 옹호하거나 수사에 비협조적인 경우마저 있었다.
▣ 기획부동산의 문제점
기획부동산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 ‘가격 부풀리기’다. 이는 기획부동산업체의 내부적인 다단계방식의 운영에 따른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텔레마케터가 지분이 나눠진 땅 1필지를 팔면 먼저 △텔레마케터는 금액의 10%를 갖는다.
그 다음 간부들은 텔레마케터 성과수당을 기준으로 일정비율씩 돌아간다. △부장(텔레마케터 팀장)은 20% △실장은 12% △상무는 15% △전무는 18% △대표이사는 20%를 성과(실적) 수당으로 가져간다.
여기에 매달 고정급여를 줌으로 기획부동산업체는 실제 땅값의 몇 배 이상으로 팔지 않고선 업체를 운영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점이 놓여있다.
이런 먹이사슬로 그 피해는 일반매수자들에게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텔레마케터가 땅값의 10%를 성과수당으로 가져감으로 싸게 산 부동산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구조는 허위·과장광고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땅을 1억원에 팔았을 경우 텔레마케터는 1000만원의 성과수당을 받고 부장~사장까지 이 수당을 기준으로 일정비율만큼 떼어간다.
둘째, ‘재산권 행사’에 문제가 있다.
땅은 개개 매수자들 앞으로 따로 분할돼야만 제대로 된 재산권을 누릴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대부분 공유지분상태다. 이럴 땐 다른 모든 공유자들의 동의 없이는 건축 이 어렵다.
기획부동산업체를 통해 산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고 서로 일면식도 없는 관계여서 공유자들 간의 협조는 거의 어려운 실정이다.
단독으로 분할됐더라도 나눠진 부분들 중 대부분은 ‘맹지’가 되고 도로에 접하기 위해 부근 땅을 더 사거나 도로사용 승낙을 얻지 못하는 한 건축이 어려워 재산적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셋째, ‘피해사실이 뒤늦게 확인 된다’는 것이다.
기획부동산업체들이 ‘땅을 사고 2~3년 지나면 값이 오른다’는 식으로 광고를 한다. 매수자 또한 ‘땅은 묻어두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 사고서 최소한 1~2년 이상 지나서야 피해사실을 알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거래 때 구체적 입증자료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 법적 대응이 어렵다.
피해사실을 알았을 땐 기획부동산업체가 종적을 감추거나 대표이사와 상호가 바뀌는 등 ‘먹 튀’에 걸리게 돼 피해회복이 어렵다.
대부분의 기획부동산 조직엔 매매에 대해 책임질 만한 자산이 없거나 책임질 사람이 없는 관계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경찰수사가 이뤄지는 가운데서도 ‘언젠가는 오르지 않겠느냐’ ‘개발이 되면 그 부근지역은 당연히 땅값이 오르는 게 아니냐’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오를 것이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어 피해자 스스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왕성상 기자 wss40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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