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 '세종대왕께 천문학의 길을 묻다'

<아시아초대석>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아시아초대석 -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GMT 거대망원경사업 참여, 세계 천문학계 이끌 것 천문학 선구자 세종대왕께 부끄럽지 않은 천문硏 될 것 ▣ 대담=왕성상 중부취재본부장 “세종대왕은 ‘짐도 하늘이 내린 제왕일진대 어떻게 내 나라 하늘을 모를 수가 있단 말이냐’라고 하셨다. 그 때 우리 스스로 천문현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하신 것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52)은 한 언론매체 기고 글에 이렇게 적었다.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곳에서 들여온 천문학에 기대야 했고, ‘간의’와 같은 훌륭한 천문관측기구는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겨야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세종대왕의 고뇌와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전신이랄 수 있는 고려·조선시대의 관청 ‘서운관’ 창립 700주년이 되는 해이자 UN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다. 무릇 ‘자주적’ 시각과 태도로 우주를 대했던 세종대왕 정신과 뜻을 되돌아봐야할 때란 생각에 박 원장의 이런 언급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관문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박석재 원장을 만나 우리나라 천문연구의 발자취와 현주소, 내일을 들어봤다.

박석재 원장(오른쪽)이 인터뷰 중 본지 왕성상 중부취재본부장에게 은하계 등 우주에 대해 설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대왕’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인자하기로 소문난 세종대왕이 일식을 정확히 예고하지 못한 천문관에게 태형을 내린 적 있다. 그만큼 천문연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는 얘기다. 우리는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 자부할 만큼 별을 사랑한 민족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천문우주분야 연구가 너무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 세종대왕 뜻을 되새겨보자는 뜻에서다. 다행히 요즘엔 세종대왕께 자랑스레 보고할만한 일들이 생겼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 GMT(Giant Magellan Telescope) 건립에 아시아지역에서 처음 참여 중이다. 또 어려운 나라살림을 쪼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슬기로운 정책들도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하는 일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박 원장이 만원짜리 지폐에 인쇄된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을 설명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천문연구원과 기상청이 하는 일을 헷갈려 한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천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책연구부문이요 국민실생활에 중요하다. 천문연구원은 우선 만 원짜리 지폐에 인쇄된 지름 1.8m급 국내 최대 천체망원경(경북 보현산 천문대)과 같은 대형 우주연구 장비들을 유지·관리한다. 천체운행 등을 바탕으로 한 해동안의 주기적인 때를 밝혀 달력 만드는 일도 천문연구원의 몫이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등을 발표하는 일 역시 이곳에서 한다. 국민 모두가 아는 GPS(위성항법장치) 기준점도 우리 연구원에 있다. 쉽게 말해 ‘국가천문대’라 보면 된다. 우리생활과 동떨어진 것 같지만 그렇잖다. 사실 매우 피부에 와 닿는 일들을 하는 곳이다. -GMT망원경이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들이 지름 8∼10m급이다. 반면 우리는 보현산에 있는 1.8m급이 최대다. 그렇다고 지금 그 정도의 망원경으로 따라하다 보면 선진국의 뒤꽁무니만 쫓는 꼴이 된다. 6∼10m급 망원경시대를 놓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GMT는 거울지름이 25m에 이르는 차세대망원경이다. 달에 켜진 촛불 하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400km 밖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도 식별할 수 있다. 그동안 조상 뵐 낯이 없었지만 이 사업이 확정 되자 ‘세종대왕께 보내는 글’을 언론에 썼다. -‘GMT사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미국, 호주와 국제공동프로젝트로 이뤄진다. GMT는 칠레에 있는 해발 2550m의 라스캄파나스천문대에 설치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별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이다. 특히 이 사업엔 우리가 일본, 중국, 대만보다 먼저 뛰어들었다. 우린 10년간 1000억 원을 들여 GMT지분의 10%를 차지하게 된다. GMT를 통해 천문학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GMT로 뭘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천문학은 문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탐사과학이다. 400년 전 망원경이 세상에 나온 이래 새로운 큰 망원경이 만들어질 때마다 상상도 못했던 발견이 이뤄졌다. 이는 또 다른 의문과 발견으로 이어졌다. GMT는 우주가 태어난 지 10억년도 되기 전에 일어난 은하의 생성 및 최초의 별 탄생을 관측하게 될 것이다. 또 폭발하는 별인 초신성이나 감마성 폭발과 같은 현상의 이해도를 높이도록 도와준다. 외계행성이나 블랙홀, 암흑물질과 자꾸 빨라지고 있는 우주의 팽창도 주요 관측대상이다. -천문연구가 선진국들보다 많이 뒤져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차원의 지원은. ▲그동안은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 들어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초과학에 대한 예산지원이 많이 늘었다. 천문연구원에서 생활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고맙게 여긴다.

천문연구는 국민실생활과 직결된 면이 많다며 정책적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하는 박석재 원장.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기보다 받은 돈을 헛되게 쓰면 안 되겠다는 자성이 더 크다. 매국노가 별 것인가. 나라에서 어렵게 짜내준 돈을 후세들에게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쓸 것이다. -제도적인 면에서 문제점과 대책은. ▲현행법 체계엔 국민시간생활의 바탕이 되는 날짜와 천체의 출몰시각 등 천문역법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에 천문학과 관련된 기본 법률은 ‘표준시에 관한 법률’ 단 한가지다. 말이 법률이지 부실하기 짝이 없다. 6줄에 129글자로 끝난다. 정말 기가 찬다. 기상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법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기본 법률도 불완전한 상태다. 천문법에 대한 보완이 꼭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천문법안 발의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내실 있는 관련 법안이 꼭 만들어지길 바란다. -‘천재소년’ 송유근 군(12)의 교육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선 송 군이 천체물리에 뜻이 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 되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3년 전 유근이를 한 행사장에서 만나 내가 쓴 책(‘우주를 즐기는 지름길’, 도서출판 우주천문기획 발간)을 선물로 줬다. 몇 달 뒤 다시 만났더니 너덜너덜해진 그 책을 갖고 있더라. 책이 낡았을 만큼 보고, 또 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천문학에 관심 있으면 대전에 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왔다. 2006년 방학 동안 9번쯤 가르쳤는데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지식을 익히고 잘 받아들이더라. 그래서 송 군과 인연을 맺었고 대덕특구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천문학 전공에 입학시키게 됐다. 숙식은 천문연 안에서 한다. 유근이는 요즘 1주일에 두 번씩 시험을 본다. 공군 대령이 맡게 될 수학수업도 비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아쉬운 점은 유근이가 지금까지 공부를 들쭉날쭉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70%쯤 고르기가 끝났다. 성취도와 학습 진도 모두가 만족스럽다. -송 군을 통해 본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견해는. ▲유근이는 복 받은 경우다. 유근이 같은 영재들이 국내에 얼마나 많겠나. 유근인 우여곡절 끝에 여러 지원들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게 됐지만 지금까지 사라진 슈퍼영재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일을 참지 못하겠다. 특히 과학기술에 뜻을 두는 천재소년이 있다면 선배과학자 누군가는 책임을 져줘야 한다. 유근이에게 관심을 쏟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올해 꼭 이뤄낼 목표와 계획은. ▲‘세계천문의 해’를 맞아 국민들에게 천문을 돌려주는 해로 만들고 싶다. 낮과 밤이 교대로 바뀐다는 것 말고도 우주에선 수많은 별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렸으면 한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찾아가고 대학 강단에도 서겠다. 세종대왕께 우주시대를 앞서 가는 후손들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 (박 원장은 일정표를 보여주며 부산시내 한 초등학교로 가서 천문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리 = 노형일 기자 gogonhi@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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