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
1997년 4월 22일 페루주재 일본대사관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페루 정부는 즉각 대사관 인근 병원에 정보분석기지를 마련하고 미국에서 지원받은 첨단 감정장비와 델타포스 정보요원4명을 투입한다. 투입된 요원들은 인질의 요청으로 들여보낸 보온병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석방된 인질의 심문을 통해 테러범들이 오후에 실내축구장에 모인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이때가 테러범들의 경계취약시간이라고 파악한 요원들은 신속히 실내에 진입 인질범을 일망타진하게 된다. 대테러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첩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대테러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첩보는 테러범의 인원 및 동선 파악, 무장한 무기의 종류, 인질의 상태 등이다. 특히 테러범의 요청에 의해 투입되는 간호사나 배달원, 여직원 등 가장요원의 경우 얼마나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급반전하기도 한다. 상황발생시 이를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함께 테러범을 단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전술적 능력은 필수적이다.
전국 여군 중 특급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중무장하고 대테러 임무를 수행중인 여장부들이 지난달 22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9명으로 구성된 수방사 독거미부대 특임중대원. 이들은 경호작전을 수행함은 물론 대테러전상황시 여성 위장요원으로 가장해 테러범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직접 제압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이날 필수 관문인 38구경 사격, 래팰(rappel) 및 체력훈련까지 소화했다. 사격훈련장에서 실시된 38구경 사격에서는 대원들의 권총에 5발의 총알을 넣고 15m 앞 테러범이 그려진 과녁을 겨눴다.
차례로 발사된 1조 사격. "탕, 탕, 탕" 5인 1조를 구성해 발사한 총알은 손목의 반동과 동시에 멈추었고 과녁 점수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자 테러범의 머리 부분에 모두 구멍이 나있었다. 10점 만점 과녁에 총알을 모두 통과시킨 주인공은 유나영 중사. 보기좋게 10cm만한 원안에 총알을 통과시킨 것을 확인한 후 그제서야 얼굴에 긴장감을 지우고 미소를 짓는다. 유중사는 올해 특급전투원을 선발하는 대회에서 최고요원으로 인정하는 금장(金章)을 받은 대원이다.
방독면사격, 야간사격에도 90% 이상의 명중률을 보인다는 타 대원들의 사격솜씨도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대원들의 평균나이는 25~26세. 가녀린 외모는 사격 과녁을 본 후 한순간에 지워지고 말았다. 거리가 가까워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에 기자도 38구경에 총알을 장전시키고 조준해봤다. 결과는 과녁 안에 모두 들어가기는 했지만 테러범이 잡고 있는 인질에게도 구멍을 만들고 말았다. 박진용 특공대대장(중령ㆍ육사46기)은 "테러건물 위장 투입시 소지하기 편한 38구경의 경우 실전에서는 재빨리 적을 겨눠 사격해야 하기 때문에 부동자세 사격 훈련만큼은 100% 명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사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 중에 또 하나가 특공무술. 고참들의 4~5단 무술단수를 포함 부대원 9명의 총 단수는 합기도, 유도, 태권도 등 28단에 달한다. 또 특임중대원들은 남자군인과 동일하게 기초체력훈련, 레펠, 공수기본 훈련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미행감시, 변장술, 잠금장치 해체술, 대화술, 간호직무교육 등을 습득한다.
이어진 건물침투훈련과 11m 높이의 타워 래펠 훈련에서는 특임중대원들의 날렵함을 볼 수 있었다. 3층 높이 건물에서 몸을 거꾸로 하고 줄에 의지한 두 명의 대원들이 거미가 거미줄을 타듯 조용히 엄호사격자세를 취하며 내려오고 침투임무를 맡은 대원이 1층 창문을 통해 쏜살같이 침투했다. 1층에 대기하고 있던 가상의 적은 눈치를 채지 못해 방어에 손쓸 틈이 없었다. 11m 높이의 타워에서 대원들이 내려오는 속도는 불과 1.5초. 대원들이 시범을 보인 역레펠은 한손에 총기를, 다른 한손에는 줄을 쥐고 정면으로 내려오는 훈련으로 흔들리지 않고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날 시범을 보인 10년차 베테랑 김원희 중사는 "처음 훈련을 받는 대원들은 종종 고소공포증을 느껴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모두들 낙하속도를 느낄 만큼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에 대원들이 보여준 특공무술의 기합소리가 남자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특공무술은 기본방어동작과 돌려차기, 낙법 등으로 이뤄졌으며 적을 찌르는 손끝에서는 매서움이 살아있었다. 박보미 중대장(중위ㆍ육사 63기)은 "대원들 모두 단증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특공무술이야 말로 특임대 임무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라면서 "동작 하나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대 중반의 특임대 여군과 30대 중반남성을 체력적으로 비교한다면 누가 우수할까? 웬만한 남성이라면 '그래도 남자인데...'라는 생각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것이다. 기자도 일말의 자신감을 갖고 특임대 여군이 체력검정으로 실시하는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 밧줄타기 4종목과 비종목 구름사다리 건너기를 도전해봤다. 여자의 신체특성상 자신있다는 윗몸일으키기는 김원희 중사와 겨뤘다. 2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시작한 경기는 1분쯤에 엇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다 김 중사가 월등히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여군 95개, 기자 57개. 김 중사의 횟수는 여자특급 67개를 훨씬 넘어선 개수였다.
이번엔 남자들이 유리하다는 팔굽혀펴기를 강희영 하사에게 제안했다. 초반에 강 하사의 속도는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일정한 속도로 2분을 채웠다. 횟수는 여군 64개, 기자 55개로 자존심이 속수무책 무너졌다. 강 하사의 팔굽혀펴기 또한 여군특급기준인 35개의 배에 가까운 횟수를 기록한 것이다.그나마 자신 있던 오래달리기는 박보미 중대장과 대결하기로 하고 출발선에 섰다. 박 중위는 경기초반 속도를 내지 않아 내심 안심했지만 500m정도 지난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절반인 750m지점에 도착한 박 중위의 기록은 3분. 앞을 보며 이를 악물어봤지만 3분20초로 또 패배하고 말았다.
<center></center>이번에 도전할 종목은 비종목인 구름사다리. 미모의 이시영 하사가 상대하기로 했다. 8m 길이의 구름사다리를 두 팔로 의지해 건너기로 하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하사는 쉴틈없이 박자에 맞춰 건너기 시작했고 마지막 순간 다리에서 호흡을 하는 순간 역전을 당해 또 무릎 꿇고 말았다. 마지막 종목인 밧줄타기에서는 상대 유나영중사가 22초만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기가 죽었지만 도전장을 던진 기자도 밧줄을 잡았다. 하지만 중도포기. 힘이 빠졌다는 변명을 해보지만 특임중대원들에게는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누가와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던 그녀들의 장담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특급이상의 체력으로 중무장한 특임중대원들. 그녀들이 있는 한 대테러작전은 임무완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양낙규 기자 if@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영상=윤태희 기자 th20022@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