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김동원 부국장 겸 정보과학부장
아이리버가 한국의 애플을 꿈꾸며 변신에 나섰다. 레인콤이라는 과거의 회사명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브랜드명인 '아이리버'로 거듭났다.
이제 새롭게 변신을 시작한 아이리버를 이끌고 디자인 경영에 나설 주역은 지난달 말 아이리버의 새 사령탑이 된 김군호 사장. 그는 지난 20년간 세계적인 글로벌 전자기업에서 체득한 경영 노하우를 새로운 아이리버에 쏟아부으며 변화를 선도할 '행동형 리더'로 전격 발탁됐다.
아이리버 대표를 맡자마자 브랜드 강화와 디자인 경영, 네트워크 사업분야 진출 등 아이리버의 다양한 미래를 구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사장을 서울 서초동 '아이리버하우스'에서 만났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회사답게 회사 건물인 아이리버하우스는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일반건물과는 외형부터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우선 브랜드 이름을 갑작스레 회사명으로 채택한 배경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김 사장은 "사명 변경하는 준비를 6개월 정도 했다"면서 "컨설팅 업체에 의뢰도 하고, 시장조사도 하면서 사원들의 의견도 들었는데 결론이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브랜드에 투자하는 것은 전략적인 일"이라며 "파나소닉만 해도 창업 90년만에 마츠시타라는 사명을 버리고 제품 브랜드인 파나소닉으로 사명을 변경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일본문화는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데도 창업자 이름을 버리고 파나소닉이라는 제품명을 회사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지켜보면서 브랜드 가치를 절감하게 됐다는 것이다.
레인콤에 처음 합류하면서 명함에서 레인콤을 없애버리고 아이리버만 남겨두자고 제안한 것도 바로 그였다.그는 "아이리버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항아리"라면서 "회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데, 긍정적인 면은 더 채우고, 부정적인 면은 덜어내는 일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아이리버라는 사명은 인터넷(internet)과 강(river)의 합성어로, 인터넷 흐름과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의 강물같은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 제품에 반영함으로써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아이리버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단순히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생활은 물론 기능과 직결되는 '360도 경험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과 경영을 접목,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이리버의 지향점이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를 바라보는 그의 견해는 독특하다. 그는 "아무리 불황이어도 투자는 해야 한다"며 주변상황 때문에 위축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리버가 큰 회사는 아니지만 운영 측면에서 보면 삼성전자와도 똑같다"면서 "상품기획, 구매, 생산, 서비스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운영 요소가 모두 아이리버 안에 존재하며, 모든 요소에서 투자가 이뤄져야 모든 요소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리버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제품을 내세워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가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불황을 견디는 이같은 저력에 대해 "그동안 어려움을 겪으며 체질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회사내에서 김사장을 지칭하는 별명은 여러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버럭킴'이다. 열혈남아같은 성격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가 '버럭'하는 것은 단순히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성격이 더욱 짙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김 대리'다. 그는 "디자인 회의를 할 때 사소한 디테일부터 경영진으로서 전략적인 그림까지 그리다보니 붙은 별명"이라며 "하지만 대표가 되고 난 후 자신이 변덕쟁이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거기에 몰입하게 돼있다"며 "하나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변덕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사장이 브랜드와 디자인을 핵심 가치로 삼는 아이리버의 가장 적합한 CEO로 평가받는 데는 브랜드에 대한 그의 확고한 철학이 한몫했다. 브랜드가 사업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 또한 그의 믿음이다.
김 사장은 "해외에서 근무하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일본 제품이랑 다른 나라 제품을 비교해보면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외산이 더 좋은 데도 일본 제품이 훨씬 비쌌다. 그 이유는 바로 브랜드와 디자인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때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에서 브랜드전략그룹장을 지낸 그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이같은 가치를 인식시키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디자인에는 경험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제품의 무게를 결정할 때 부품의 무게나 기술들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모두 감안해,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무게'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김사장의 디자인 경험과 디자인 경영의 출발점은 바로 소비자에 대한 배려였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 경영은 디자인이 경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뜻한다. 디자인은 디자인 부서만의 일이 아닌 관리, 구매, 마케팅 모든 부서의 일이다. 아이리버하우스를 꾸밀 때도 디자인 부서는 자재 선택부터 사무실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했다. 이 때문에 아이리버하우스 8층에 위치한 디자인실은 회사가 아닌 카페 같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예쁜 물건을 파는 소품가게 같기도 하다.
김 사장은 아이리버의 디자인경영을 전직원이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 전문가가 브랜드를 '소비자와의 약속'이라고 정의했다는 김사장의 말에 공감이 갔다.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직원이 노력해야 가까스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또한 아이리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네트워크를 선택했다. 최근 아이리버가 무선 인터넷이 되는 전자사전 등 네트워크를 강조한 제품들을 전략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넷북이 왜 잘 팔리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결국 네트워크의 힘이 아닐까요" 그는 이같이 반문하면서 "PC가 밖으로 나가면서 네트워크의 힘이 중요해졌고, 노트북은 더욱 축소되는 모양새를 띠게 됐다"는 말로 트렌드를 압축했다. 반대로 네트워크 힘을 가진 휴대폰은 PC의 기능들을 흡수하며 점점 커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이 네트워크와 인터넷, 콘텐츠의 힘이라는 지적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 모든 기기가 네트워크 혜택을 받는 '네트워크 혁명'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여러가지 기기에 네트워크 기능을 넣으면 소비자들은 다양한 기능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며 "아이리버는 기기와 네트워크의 결합을 염두에 두고 여러가지 제품군을 구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사장은 중국시장에서 3년 내 1000억원 매출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다. 그는 또 창의력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리더십은 경영진만 지니는 것은 아니며, 리더십은 서로 함께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최근 출시된 아이리버 신제품의 '사용자환경'이 바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공개했다. 누구나 경영에 참여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꿈꾸는 디자인 경영의 핵심이 아닐까.
정리=함정선 기자 mint@asiae.co.kr
사진=윤동주기자 doso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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