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박소연 기자]"청춘의 사랑이 불꽃같다면 중년의 사랑은 불씨같아요. 불씨처럼 지피기 쉽지 않지만 활활 타오르지는 않아도 한 번 켜지면 오래가죠"
배우 윤석화가 '시간이 흐를수록'(원제: 오래된 코미디)으로 2년 만에 연극판 무대로 복귀한다. 요양원 원장 '로디온'과 이 요양원에 환자로 들어온 전직 여배우 '리다'의 사랑을 그린 이번 작품에서 윤씨는 자신과 꼭 닮은 '리다'를 연기한다.
35년 동안 연극 하나만 바라보고도 여전히 연극에 푹 빠져 있는 그를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리다와 저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삶의 부피나 구역이 비슷하고 상처도 겪을만큼 겪었고.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속은 따듯한 리다처럼 솔직해서 손해본 여자가 바로 저에요"
솔직해서 손해 본 여자? 그는 연극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군더더기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쓸데없는 일에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해요. 그러지 않으면 연극배우로 이만큼 못왔죠. 그래도 마음이 약하고 정이 많아요. 인간적으로는 허점이 많지만 모자란 것들은 긍정의 힘으로 나아가죠"
연극배우로서 35년을 걸어온 그의 원래 꿈은 놀랍게도 '현모양처'였다.
"우연히 '꿀맛'이라는 연극을 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 꿈은 '현모양처'였거든요. 배우를 할 생각을 없었어요. 그냥 책을 많이 읽는 소녀였죠"
그는 희곡을 읽게 됐고 '연극이 이런건가' 다른문학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받게 됐다.
"다른 문학이 안개라면 희곡은 비를 맞는 것 같았어요. 그냥 '꿀맛'이라는 작품자체에 매료됐던거죠. 그 때는 평생할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연극을 하면 멋있겠지, 현모양처가 돼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거란 단순한 생각이었죠"
하지만 연극을 하게 되면서 그는 알에서 깨어났다.
"연극을 하고나니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고 1회 공연이 끝나면 허무해서 또 다음 작품을 꿈꾸게 됐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2년이 지나고 연극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업으로 삼기로 결심을 하고 80년에 뉴욕으로 떠났죠"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또 다른사람은 '치유'라고 말하지만, 그에게 연극은 '질문'이다.
"연극은 관객들에게 답을 주지는 않아요. 좋은 질문을 찾아내 관객들에게 제시하죠. 이것들은 대답되어 질 수 없는 질문들입니다. 그 답은 관객 스스로가 찾아야 하죠. 모양과 색이 다른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지만, 좋은 질문일수록 관객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겠죠"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정말 매력적인 모습이라 연인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남자친구가 없었어요. 갑갑하게 살았죠. 다시 태어나면 연애를 많이 하고 싶어요. 남자한테 인기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죠. 의외로 보수적이고 순진했었던 것 같아요. 좋아해도 이야기를 못하고 속으로 짝사랑만 하는 편이었죠. 생각해보면 남자들도 어려워서 나한테 다가오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인생에서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입양한 아이들.
"아이들을 저보다 더 사랑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라면 버릴 수도 있죠.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사랑의 물을 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좋은비료가 독약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가능하면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르려고 해요. 원하는 것을 다해주는 것보다 많은 생각을 하는게 사랑인 것 같아요"
윤석화는 여전히 삶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배우였다. 그가 공연하는 '시간이 흐를수록'은 다음달 7일부터 6월5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볼 수 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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