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파우더에 이어 화장품, 의약품으로 석면 공포가 번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심각한 질병이 우려된다는 의견에서부터 지나친 과민반응이란 목소리까지 다양하다. 인체에 흡입됐을 때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석면, 흡입 수준이 아니라 아예 먹고 발랐는데 정말 큰 일이 난 걸까?
◆베이비파우더 때문에 폐암 발생?
석면은 섬유모양을 갖는 광물로 폐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들이마셨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 때문에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공기중에 흩뿌려진 석면을 마시게 될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위험성에 비해 공포감이 너무 극대화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석면이 위해하려면 얼마나 많이, 오래동안, 어떤 형태로 흡입했느냐가 중요한데,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베이비파우더로 인한 발암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설명이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한국독성학회·한국환경성돌연변이·발암원학회에 자문을 얻어 마련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상인의 폐에서도 g당 20∼30만개의 석면이 발견되므로 베이비파우더를 통한 극소량 노출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공식 설명자료를 통해 베이비파우더 속 미량의 석면에 1∼2년 정도 노출되는 수준이라면 폐암 등이 초과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담배를 갖고 다닌다고 폐암에 걸리나?
베이비파우더는 그렇다 치고, 거의 전 국민이 사용한다고 봐도 되는 화장품과 의약품에까지 석면이 들었다는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다. 위해성은 어떨까.
일단 화장품만 국한해 살펴보자. 석면은 피부를 통과해 인체로 들어오지 않으므로 일단 내부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 위험은 없다.
최근 대한피부과의사회가 석면 화장품을 썼을 때 접촉성 피부염에 걸릴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으나 이는 현실적이지 않은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이 경고가 의미 있으려면 석면이 다른 물질보다 접촉성 피부염을 더 많이 발생시켜야 하는데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접촉성 피부염은 외부 물질에 피부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생기는 것이며 어떤 물질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석면은 그 자체가 매우 안정적인 형태를 띄고 있어 자극이 상당히 약한 물질이다. 석면 알러지라는 질병이 없는 이유다.
결국 '석면이 피부염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단정할 순 없다해도 '다른 것보다 더 많이 일으킨다'고도 할 수 없고, 때문에 현실적으로 위험성을 강조할 필요는 굳이 없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김동일 성균관의대 산업의학과 교수(강북삼성병원)는 "석면은 피부나 호흡기로 전혀 흡수되지 않고 100% 배출되므로 영향이 없다"며 "점막을 자극해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호흡기로 들어온 석면이 폐에서는 그럴 수 있으나 소화기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금가루가 섞인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납가루 역시 물에 타 먹어도 중독되지 않고 오직 호흡기를 통해서만 중독을 일으킨다.
하지만 화장품이든 의약품이든 발암물질인 석면을 굳이 넣으라고 '권장할' 일은 아니므로 제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 바라보면 된다.
의약품과 화장품에 대한 식약청의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즉 '석면을 넣지마라'고 말하는 것과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구분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일례로 "1급 발암물질이 든 담배도 '피워야' 그 효과를 내는 것이지 '소지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위해하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김형렬 가톨릭대학교 산업의학과 교수도 "동물 대상 독성시험에서 소화기로 주입된 석면이 대장암 발생율을 높인다는 결과도 있었지만 반대로 특별한 영향이 없다는 신뢰할 수 있는 대규모 연구가 더 많다"며 "소화기 쪽으로는 암이 발생할 것 같지 않다는 게 현재의 결론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멘트 공장, 광산지역 등에 사는 사람이 석면에 오염된 물을 마셔 소화기 계열 암발생이 증가했다는 보고는 또 뭘까.
김동일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물에 함유된 석면이 공기로 흩어지면서 이를 사람들이 호흡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소암 위험 증가는 확실…사용 자제해야
베이비파우더나 의약품, 화장품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은 제조과정에서 쓰이는 '탈크'라는 원료로부터 석면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면이 있든 없든 바로 이 '탈크'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탈크는 현재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정한 발암의심물질(possible human carcinogen, class 2B)로 구분돼 있다.
실제 탈크가 주성분인 파우더 제품을 여성의 성기 부근에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때 난소암이 증가한다는 것은 확립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약 30% 정도의 위험이 증가한다. 이 역시 많이 쓸 수록, 오래 써왔을 수록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의심'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난소암의 증가가 '탈크' 그 자체 때문인지, 탈크 속에 든 타 성분 때문인지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전 예방 차원에서 IARC는 성기 주변에 파우더를 사용할 경우 옥수수녹말 등으로 만든 파우더로 대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앞으로는 식약청 방침에 따라 석면이 제거된 탈크만이 파우더에 사용될 것이지만, 이런 이유를 감안할 때 여아 성기 주변에 베이비파우더를 도포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하고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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