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실종', 35억원 '추격자' 능가할까?

[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지난해 전국 500만 관객을 모은 '추격자'를 닮은 영화 '실종'가 19일 개봉한다. 2007년 여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실종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재구성된 영화 '실종'은 연쇄살인마의 잔인하고 비열한 살인행각과 그에 의해 희생된 여동생을 찾아 나선 여자의 사투를 그린 작품. '실종'은 자매의 행복했던 한때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본론으로 들어간 영화는 배우지망생인 동생(전세홍 분)이 사기성이 농후한 영화감독과 시골길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찾은 곳은 닭백숙을 파는 집이다. 몸매를 한껏 드러낸 옷을 입은 여자는 휴대전화 신호를 찾아 집밖으로 나가고, 음탕한 눈빛을 가진 영화감독은 60대로 보이는 한 촌부(문성근 분)의 부탁을 받고 창고로 들어간다. '실종'의 장점은 인물 설명과 배경 설명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촌부 판권은 지체 없이 바로 영화감독의 머리에 도끼를 꼽고 배우지망생 현아를 우리에 가둔다. 현아를 괴롭히는 판권의 잔인한 행동이 이어지고 언니 현정(추자현 분)이 실종된 동생을 찾아 시골마을로 들어선다. '추격자'처럼 경찰은 허수아비 같은 존재다. 무엇보다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했다는 점과 연쇄살인마에 납치된 희생자의 가족(혹은 측근)이 직접 살인마와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물론 '실종'은 세부 묘사에 있어서 '추격자'와 많은 차이가 있다. '추격자'가 독한 수컷들의 전쟁을 그리는 한편 '실종'은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수컷들과 싸우는 연약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좇는다. 영화 초반에 이미 정체가 노출된 살인마를 잡지만 증거 불충분과 주소불명으로 헤매는 '추격자'와 달리 '실종'은 살인범의 소재지가 바로 드러남에도 살인범을 인식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형사라는 존재와 사법권이 비교적 큰 장치인 '추격자'에 비해 '실종'에서 등장하는 경찰은 공무원 수준의 파출소 경찰에 불과하다. 또 대부분의 사건이 밤에 이뤄지는 '추격자'와 달리 '실종'은 낮에 일어나는 사건이 더 많다. 세부 설정에서 많은 부분이 차이를 보이지만 '실종'과' 추격자'는 장르의 법칙 안에서 비슷한 윤곽선을 그린다. 연쇄살인마의 유형이 비슷한 것처럼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영화 또한 비슷할 수밖에 없고, 장르의 언어가 유사한 탓에 드라마적 구성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순제작비가 35억원이 투입된 '추격자'와 달리 '실종'은 10억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영화다'처럼 배우들이 투자 개념으로 출연료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투자된 비용이 적기 때문에 '실종'의 외양이 부실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극의 완성도를 놓고 봤을 때 '실종'은 '추격자'보다 가격대성능비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김성홍 감독은 '손톱' '올가미' 등을 통해 보인 스릴러 장르의 연출력을 '실종'에서 유감없이 선보인다. '실종'은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는 클리셰들로 가득 차 있지만 흥미롭게도 유치하거나 단조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스릴러들이 집착하는 반전 하나 없이도 매끈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거기에 주연배우 문성근은 근래 들어 최고의 명연기를 선보인다. '실종'은 상업영화로서 이상적인 98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루한 틈을 주지 않고 숨가쁘게 달려간다. 모범생처럼 장르의 공식을 그대로 끌어오지만, 공식 속의 요소들을 영리하게 재배치하고 치밀하게 잘 조합시켜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장르의 세부 장치들을 유기적으로 조합시키는 연출력은 2월 개봉한 세 편의 스릴러 '마린보이' '작전' '핸드폰' 이상이다. 하지만 '실종'은 대중적인 호감도를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내부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살인마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럽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악인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이는 김성홍 감독과 주연배우 문성근의 의도다. 분노와 혐오를 이끌어내기 위해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도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상 스릴러로 분류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실종'은 스릴러와 호러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영화다. 잘 만든 장르영화이기에 '실종'은 '추격자'만큼 관객을 힘들게 한다. 스크린 내부의 감정적인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한 단점이다. 마케팅적인 측면을 제외한 완성도로 따졌을 때 '실종'은 '추격자'만큼은 아니라도 그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둘 만한 자격이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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