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용훈 대법원장 '16년만의 데자뷰'

이용훈(67·사진) 대법원장이 취임 3년 6개월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촛불 시위자'들의 재판에서 신영철 대법관(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재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 대법관은 당시 보낸 이메일에서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다"고 발언, '재판 압력'에 신 대법관과 함께 이 대법원장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진상 규명에 나서면서도 "사법 행정이냐, 재판 간섭이냐는 델리키트(미묘한)한 문제"라며 "그걸 간섭으로 느끼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해 이번 사건이 판사 압박이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strong>◆'사법개혁 전도사' 이용훈 = </strong>이 대법원장은 1994년 법원행정처 차장 재직 시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주무위원으로 활동하며 사법개혁 작업을 이끌었고, 2000년 대법관에서 퇴임한 후 법관인사제도 개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재판과 사법행정에 있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한 후 '국민참여 재판 도입' '형사재판 양형제 마련' '로스쿨 제도 도입' 등 선진 사법 시스템을 갖추는데 임기 내 역점으로 두고 사법 개혁을 이끌어왔다. 특히 이 대법원장은 1993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장 재직 당시 '제3차 사법파동'이 벌어졌을 때 합리적인 처신으로 소장판사들의 '사법 민주화운동'을 후원했던 장본인이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법관의 관료화를 막고 대법원장의 인사권 견제를 통해 소신 있는 판결을 보장해야한다는 주장이 담긴 소장판사들의 건의문을 법원 수뇌부에 전달해 사법 개혁에 일조했다. <strong>◆'16년만의 데자뷰' = </strong>16년 전 사법 민주화를 열망했던 소장판사들의 의견을 법원 상층부에 전달해 개혁을 후원했던 이 대법원장이 이제는 사법 민주화를 저해하는 사법부 수장으로 법원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3차 사법파동'이 발생했던 1993년은 오랜 군사정권 시절을 끝내고 문민정부가 출범해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고조됐던 시기였다. 사법부 역시 사법 민주화를 위해 소장판사들을 비롯, 법원 구성원들이 '개혁시대 사법의 과제'를 논했었다. 형식적ㆍ절차적 민주화를 이뤘다는 지금 역설적으로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 민주화에 치명적 오점으로 남을 지도 모르는 이번 '촛불 재판 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돼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앞으로 남은 이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과제는 법원 내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확보는 것에 달렸다"며 "법원이 관료적 조직으로서 인사권을 갖고 있는 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등으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내부개혁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우 기자 bongo79@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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