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서쪽서 2시간만에 동쪽 끝까지 산불 번져
거동불편 고령자 업고 대피시켜
1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선착장의 주민들이 입이 마르도록 산불 위기 속 '숨은 영웅'에 고마움을 표했다.
연합뉴스는 이날 마을 이장 김필경(56)씨, 어촌계장 유명신(56)씨,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31)씨가 많은 산불 당시 마을 주민을 깨워 대피시켰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을 거쳐 영덕 서쪽 경계 지점까지 확산한 것은 지난달 25일 오후 6시께다.
영덕군은 25일 오후 5시 54분에 지품면 황장리에 산불이 확산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산불이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축산면 경정3리까지 번지는 데는 2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산불이 확산하며 전기, 통신이 마비돼 산불이 몇시에 지역으로 확산했는지 아는 주민은 드물었다. 다만, 오후 7시 40분쯤엔 밖에 연기가 자욱했고 8시쯤엔 산불이 마을까지 번졌다고 보는 주민이 많았다. 당시 마을 주민 약 60명 중 상당수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이미 잠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필경 이장은 선착장에서 오른쪽, 유명신 계장은 왼쪽,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수기안토씨는 중앙으로 가서 마을 주민을 깨워 대피시켰다. 이상한 낌새에 밖으로 나와 산불을 확인한 덕분이다.
김 이장은 "빨리 나오라고 방송을 해도 나오지 않아서 셋이 함께 고함을 치면서 깨우거나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수기안토(31)씨는 마을 어촌계장 유명신씨와 함께 "할머니 산에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해야 해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잠을 깨우러 돌아다녔다.
그는 8년 전 입국한 뒤 줄곧 이곳에서 선원으로 근무한 터라 할머니를 "할매"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를 정도로 한국 생활이 능숙한 편이다.
하지만 해안 비탈길에 집들이 밀집해 노인들이 빨리 움직이기엔 어려웠다. 이에 두 사람은 노인들을 업고 300m 거리에 있는 방파제까지 옮겼다.
수기안토씨와 같은 마을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레오씨도 주민 구조에 일조했다. 그는 어눌한 한국어로 "할머니"를 외치며 대피를 도왔다.
레오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인 임청길(57)씨는 "이 친구들(외국인 선원)도 자기 나름대로 놀랬다"며 "자기들끼리 '가자 가자'해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왔다"고 전했다.
이어 "이 친구들도 영덕군에 주민세 내는데, 나라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며 "우리도 지금 다 일을 못 해서 입에 풀칠할지 걱정인데, 이 친구들 월급날이 코앞이라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대피한 주민들은 불이 마을을 덮치자 차에 타거나 달려서 방파제 끝으로 피했다. 현장은 불길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데다가 연기가 자욱하고 불똥이 날아다녔다.
주민들은 방파제 콘크리트 블록 사이사이에 있거나 차에 타고서 긴급하게 해경 등에 연락했다.
해경은 축산면에서 민간구조대장으로 활동 중인 전대헌(52)씨에게 연락해 주민을 구하러 나섰다. 전 대장이 다른 후배, 직원과 함께 레저보트와 낚시 어선을 몰고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주민들이 방파제에 있어 배를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 대장은 전 대장은 때마침 선착장에 있던 키가 꽂힌 소형 트럭을 봤다. 이후 이를 몰고 방파제까지 달려가 주민 10여명을 태우고 선착장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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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자신의 보트로 주민을 낚싯배까지 이동시켰고 이를 한 차례 더 반복해 낚싯배에 20여명을 태우고서 축산항에 입항했다. 나머지 주민 상당수는 울진 해경 도움을 받아 축산항으로 이동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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