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화장실에는 있고 남자 화장실에는 없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있고, 없고 차이가 더욱 도드라진다. 무엇일까.
며칠 전 극장에 갔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연히 목격하고 말았다. 화제작인 '사도'가 끝나자마자 생리적 현상에 이끌려 화장실로 내달리는데 여자 화장실에 줄이 늘어서 있는 거다. 처음 서너 명이었던 행렬은 볼일 급한 여성들이 가세하면서 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붐비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드나드는 데 지장이 없는 남자 화장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진풍경이라니. 저 행렬에 마눌님까지 끼어들면서 도대체 꼬리가 언제 줄어드나 한참이나 곁눈질을 하다가 '변태'로 오해를 받았으니 이래저래 민망한 일이었다.
여자 화장실의 긴 줄, 그러고 보면 눈에 익은 풍경이다. 여름 휴가철이나 민족 명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다. 마침 추석이 코앞이다. 재작년 추석도, 작년 추석도 그랬지만 올해 추석도 눈에 선하다. 앞뒤로 꽉 막힌 차량들의 파도에 휩쓸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들어선 휴게소. 좁은 공간에 구겨져 있던 팔 다리 어깨 허리에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도 잠시, 어김없는 화장실 전쟁이다.
남자들이야 신속 정확히 볼일을 보고 나와 음식점을 기웃거리는데 여자들은 아직 반환점도 돌지 못한다. 정장 곱게 차려 입고 시댁 가는 며느리와 '언제 시집가느냐'는 잔소리를 각오하는 노처녀와 '공부를 그럭저럭 한다'는 거짓말을 또 해야 하는 어린 처자들이 앞뒤로 서서 '도대체 대한민국 여자 화장실은 왜 이 모양이냐'고 몸을 파르르 떨 때쯤에야 겨우 문고리 하나가 주어진다. 그 속도 모르고 '무슨 화장실을 서울까지 다녀왔냐'며 타박하는 무지렁이 남편이 아내는 얼마나 야속한지.
그 꼴을 당하고 시댁에 가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고, 상을 차리느라 어깨가 시리고, 설거지를 하느라 몸살을 앓는데 남자들은 다시 한 번 신속 정확히 음식을 잡수시고는 고스톱을 치느라 소란스럽다. 이러니 추석 증후군이니 며느리 스트레스니 풍토병이 창궐하는 거다. 그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명절 직후 주부들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쇼핑을 즐긴다. 그 스트레스가 결국 폭발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평소보다 20% 늘어난다.
한국도로공사는 해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여자 화장실을 늘리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것처럼, 우리사회가 남녀평등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휘영청 밝은 달도 아니건만 남녀차별이 자꾸 속살을 내미는 추석 한가위. 그러니 남성들이여! 여자 화장실의 긴 줄을 보면서 올해만큼은 각별히 자중하시길 정중히 청한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