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일주일에 15시간, 하루 3시간 만 일하면 된다. 그래도 대부분 물질적으로 풍요하다. 경제적 걱정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여가를 잘 보낼지를 고민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0년에 펴낸 저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예언한 2030년 인류의 모습이 대강 이렇다.
2015년 현재 시점의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앞으로 15년이 남았지만 꿈 같은 얘기로만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최소한의 노동력만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었는데 부(富)는 소수에 집중됐고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실업의 공포에 시달린다.
현대인들은 고대 노예나 중세 농노들보다 더 오래 일한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4세기 중엽 로마의 연간 휴일은 175일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방면에서 한국은 군계일학이다.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국 직장인의 한 해 평균 휴가 일수는 8.6일인데 프랑스 30.7일이다.
해외에서 한국은 좋게 말해 '워커홀릭', 거칠게 말해 '일벌레'로 비춰질 법하다. 한국 대기업에서 10년간 일했던 프랑스인의 책이 최근 화제가 된 바 있다. 제목은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들'. 부제는 '효율의 광란에서 보낸 10년'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직장인들은 하루 10~12시간씩 일하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엔 정보를 교환한다며 골프를 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개인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회사이고 폭탄주를 마시고, 또 마시는 한국인들의 일상이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노사정 합의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징계해고나 정리해고 외에도 일반해고의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이지만 결국 '저성과자'나 '업무부진자'를 솎아내기 쉽도록 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가 크다. 속된 말로 '찍히면 훅 갈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갑으로서의 회사 지위는 더 올라갈 것이고, 다수의 직장인들은 더욱 회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보호해줄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10곳 중 1곳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노조가 있어도 힘 쓰기가 쉽지 않아질 것이다.
장시간 노동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실직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의 수입이 없어지면 가족은 그야말로 정글에 내던져진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어떤 문제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피로사회이자 불안사회의 그림자가 깊어져간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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