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 전략연구단 단장
'무역의 날' 정부 산업역군 선정 소감 밝혀
"출연연 인프라·예산 턱없이 부족, 제도 개선 必"
"기업·출연연 교류·소통 활발해지도록 힘 쓸 것"
"데이터 축적이 기술 강국의 길…실패 용인돼야"
내부 반대와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배터리 개발을 지속한 경험은 오늘의 한국 배터리 산업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김명환 한국화학연구원 소속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 전략연구단 단장은 4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LG가 벌인 경쟁이 국내 소재와 장비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며 "현재는 전략연구단 단장으로서 무너진 산학연 역할을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62회 '무역의 날'을 맞아 배터리 분야 산업역군으로 선정됐다. 김 단장은 "정부의 산업역군 선정은 개인의 공이 아니라 감독이 좋은 팀을 만난 것과 같다"며 "배터리 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단장은 LG화학 입사 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배터리 산업의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현장을 진두지휘해온 주역이다. 1996년 LG화학에서 고(故) 구본무 회장의 전지 개발 의지 아래 연구를 시작했고, 일본이 장악하던 시장을 10년 넘게 뒤쫓던 시절도 버텨냈다. 애플 노트북 대규모 리콜 사태 이래 "LG화학이 어려워진 주범"이라는 질타를 받던 시기에도 배터리의 사업성과 미래를 설파하며 사업을 발전시켰다.
김 단장은 "당시 서로를 이기려는 삼성과 LG 간 치열한 경쟁이 일본을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이었다"며 "이 경쟁이 자연스럽게 국내 소재·장비 기업의 성장, 다양한 기술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소형전지 사업부가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자 김 단장은 자동차용 배터리 시대를 내다봤다. 2005년 자동차용 전지 연구소를 설립해 본격 개발에 착수했지만, 전지 부문의 적자는 계속됐다. 내부 반대도 거셌다. 그러나 그는 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과의 계약을 성사하며 대내외 신뢰를 끌어올렸고, 한국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기반을 다졌다.
김 단장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차전지 확산은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었다"며 "지속가능한 자원인 태양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고 저장하는 기술이 결국 미래를 바꿀 거라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기술 혁신의 핵심으로 소재와 공정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배터리 소재 차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부턴 공정 혁신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4년 가까이 스마트 팩토리 구축 연구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데이터 수집 분석 비용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다. 김 단장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표준화가 중요해졌다"며 "배터리를 잘 모르는 직원이 와도 공장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며, 스마트팩토리 도입 이후 미국, 인도네시아 공장 수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차전지 혁신 전략연구단장으로 새 미래 구상 "산학연 끊긴 다리 복구해야"
지난 2월부터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 전략연구단을 이끄는 그는 지금 한국 배터리 산업이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로 산학연 간 역할 붕괴를 꼽았다. 김 단장은 "기술성숙도(TRL)가 1~9단계로 나뉘는데, 원래 학교는 1~3, 출연연 4~6, 기업이 7~9단계를 맡는 구조"라며 "그런데 출연연이 인프라·장비·예산 부족 문제로 2~4단계 연구만 하게 되면서 정작 산업에 필요한 5~6단계에 공백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비 구매 절차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 장비를 중복으로 구매하려면 허가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며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뽑으려면 여러 장비가 동시에 필요하다 보니 과제 시작 후에도 10개월을 장비 구매에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선 정부 출연기관의 예산·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이런 어려움을 바로잡기 위해 출연기관과 기업 간 벽을 머루고, 공통 언어와 인프라를 갖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 연구단엔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이 들어와 활발한 교류와 소통을 시작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가장 큰 도전은 단연 '중국'이다. 김 단장은 "중국과의 가격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자원·인재 네트워크를 갖춘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 자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호주 등 자원 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미국·유럽·인도에서 배터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합작법인(JV)을 제안해 유리한 입지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단장은 한국 연구 환경의 가장 큰 약점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그는 "미국은 과제 성공률이 20%도 안 되고, 일본은 30% 수준이지만 한국은 90%가 넘는다"며 "한번 실패하면 다음 과제 참여가 어려우니 실패하지 않을 과제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실패를 용인해야 데이터가 축적되고, 글로벌 인재도 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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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단장은 "전지 사업은 어느 회사든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거친다"며 "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재력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산업을 성장시킨다"고 강조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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