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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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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日 청년과 저성장 韓 청년
28년 시차 두고 보는 같은 영화
변하지 않은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

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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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는 28년이 지난 지금도 강력한 울림을 준다. 최근 재개봉해 9월 박스오피스 9위(16만9708명)를 기록했는데, 주 관객층이 20대였다. 오늘날 청년들이 이 영화를 찾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다수는 이 영화를 환경 보호와 자연 찬미의 메시지로 읽는다. 하지만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그리면서도, 이면에 1990년대 일본 사회의 경제 불황, 청년 세대의 좌절, 공동체의 균열을 담았다. 그 불안은 2025년 한국에도 드리워져 있다.


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스틸 컷

버블 붕괴 직후의 일본, 절박한 명령 '살아라'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에서 1997년 7월 개봉했다. 당시 일본은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6년째 장기 불황에 빠져 있었다. 1996년 3.1%로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성장률이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종신 고용 시스템은 무너지고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윤택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학력 청년들은 경제적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런 시대에 '모노노케 히메'의 캐치프레이즈 "살아라(生きろ)"는 단순한 격언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절박한 명령처럼 다가왔다. 미야자키 감독은 16년을 구상하고 3년을 제작하며 240억 원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일본에서만 1420만 명이 관람해 2070억원을 벌어들였다. 1년 동안 상영되며 일본 극장가 역대 최장기간 상영 기록을 세웠다. 1997년 12월 '타이타닉' 개봉 전까지 일본 영화 흥행 역대 1위였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1998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본 일본 영화는 '모노노케 히메'뿐이다."


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스틸 컷

주변부 청년, 선악 없는 갈등, 봉합되지 않는 균열

주인공 아시타카는 일본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에미시 부족 출신이다. 중심과 주변, 권력과 소외의 갈등을 상징한다. 1990년대 일본 청년들은 경제 호황기를 이끈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베이비붐 세대)의 그늘 아래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막상 사회에 나가려는 순간 모든 문이 닫혀 있었다.


영화에서 숲을 지키는 산, 타타라 마을을 이끄는 에보시, 중재자로 나서는 아시타카는 모두 명분을 갖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어느 한쪽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에보시는 한센병 환자와 매춘부에게 일자리를 주는 여성 지도자지만, 동시에 숲을 파괴한다. 산은 숲을 지키나 인간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다. 시시가미(숲의 신)는 생명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결말은 완전한 화해가 아니라 잠정적 균형에 머문다. 시시가미는 죽지만 숲은 다시 살아난다. 아시타카와 산은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널 좋아하지만, 인간은 용서할 수 없어." "그래도 좋아, 너는 숲에서 살아. 나는 타타라 마을에서 살게. 함께 살아가자." 이 대사는 타협과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본 사회가 직면한 불화와 균열의 은유다.


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스틸 컷

2025년 한국, 반복되는 균열

2025년 한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2023년부터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져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15~29세)은 6%대를 기록했고, 체감 실업률은 훨씬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방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위기는 자연환경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달 발간한 '한국 기후 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한반도의 온난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폭염, 집중호우 등 기상재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 수는 2020~2023년 평균 1709명에서 지난해 3704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경제 성장을 우선할 것인가, 환경 보존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만금 간척사업, 가덕도 신공항, 제주 제2공항 논란이 이를 증명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되지만, 동시에 'ESG 피로감'이라는 말도 나온다. 약자를 보호하나 자연을 파괴하는 에보시의 양면성, 숲의 정령들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생명력의 이중성과 닮아 있다.


28년 전 일본의 절망, 지금 한국의 불안…여전히 청년 움직이는 '모노노케 히메'[슬레이트]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스틸 컷

변하지 않은 본질, 여전히 유효한 질문

미야자키 감독은 2023년 10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복귀했다. 82세에 발표한 이 작품은 가장 자전적인 영화로 평가받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삶을 회고하는데, '모노노케 히메'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감독은 갈등을 봉합하거나 판타지적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충돌하면서도 공존해야 하는 세계의 불가피한 긴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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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일본의 1420만 관객은 버블 붕괴 뒤의 불안 속에서 이를 목도했다. 2025년 한국의 20대 관객은 저성장과 기후 위기 속에서 같은 영화를 본다. 28년이 지났으나 질문은 변하지 않았고, 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노노케 히메'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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